Page 29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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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남한 강단 가야사학계 김수지
를 통일했다고 주장하는 ‘기내 야마토 왜 중심 사관’에 편향 종속되어있으며, 현재 가야사 고고학
계 또한 그에 따르고 있다는 것을 서술 비판할 것이다.
Ⅱ.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일본단일민족주의’와 ‘기내(畿內)
야마토 왜(倭) 중심사관’
쓰다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약칭 만철 1906년 설립)’의 도쿄지사에 부설된 ‘만선지리역사조
사실’에 조사연구원이 된 때는 1908년이었고, 당시 34세였다. 조사연구원 쓰다는 만선지리역사
조사실에서 ‘조선지리역사’를 담당했다. ‘만선사관’으로 조선역사를 연구하던 쓰다는 1913년
『신대사의 새로운 연구』를 발표하는데 ‘일본민족 단일민족’ 주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사실상 일본의 국민은 인종이 같고 언어가 같고 풍속․습관이 같으며 또한 열력(閱歷)도 같은 동
일민족이기 때문이며 황실과 일반 씨족과의 사이가 친애의 정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1)
황실과 여러 민족, 즉 국민은 동일한 부모에서 나온 동포이며 황실은 그 동포의 종가이기 때문에
황실과 국민은 본래 일체이며 멀리 떨어진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뼈와 살처럼 내
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래 끊을 수 없는 관계, 끊어서는 안 되는 관계이며 그러므로 만세일계이
다. 2)
위의 내용에서 보이듯이 쓰다는 일본민족은 단일한 동일민족이며 일본 황실은 일본국민이라 하
는 일본민족과 같은 부모에서 나왔으며, 일본민족의 종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단일민족
론’은 사실상 쓰다의 스승인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일민족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시라토리
는 ‘단일민족론’을 주장하면서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손민족·야마토·이즈모·구마
소 등을 민족이 아니라, 정치적 집단으로 파악했다. 그는 일본열도에는 원래부터 일본 민족이외에
는 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는 천손강림이 2,600년 전에 일어났다고 하는 『고사기』나 『일
본서기』 기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신대기’에 의하면 일본
민족은 상당 부분 일본열도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신화적 형식으로 은유한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 민족의 형성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주민들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
장하게 되면 일본 천황이 일본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구심체 역할을 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하게
1)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쓰다 사학(津田史學)’신대사 해석과 한·일 민족의 계통관계」,『日本思想』12호,(200
7), 89쪽.
2) 세키네 히데유키, 『일본인의 형성과 한반도 도래인』,(경인문화사,2020),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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