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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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와 행촌 이암  박덕규




                                         단군세기와 행촌 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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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론
                             Ⅱ. 천보산과 청평산
                             Ⅲ. 강화도 해운당
                             Ⅳ. 『단군세기』의 역사체계
                             Ⅴ. 「단군세기」와 민족 사서의 비교
                             Ⅵ. 결론


                   【연구요약】 『단군세기』는 고려말 행촌 이암(李嵒, 1297~1364)의 저작이다. 『단군세기』에는 초대

                   단군왕검에서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에 이르기까지 2096년간의 단군조선사가 편년체로 기록

                   되어 있다.
                   본 논문은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를 저술했던 고려 시대 상황과 혼란한 시기 수문하시중에 올랐
                   던 행촌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은둔했던 천보산과 청평산, 그리고 『단군세기』를 저술했던 강

                   화도라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다. 또한, 청평산인 이명과 복애거사 범장, 그리고 행
                   촌 이암 세 사람이 민족을 주체로 세운 사서를 저술하게 된 계기가 된 ‘천보산 결의’ 즉, 천보산

                   태소암에서 소전거사로부터 신서와 역사의 진결을 받게 된 장소가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경기도
                   양주 천보산이 아니라 고려 초에 선불에 능통했던 이자현이 은거했던 춘천 청평산과 청평사였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또한, 『단군세기』와 『규원사화』, 『삼국유사』 등 다른 사서와 비교검토하면서
                   『단군세기』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역사체계와 행촌의 후손 이맥의 『태백일사』와 차이점을 살펴보

                   면서 그 사료적 가치를 고찰한다. 끝으로 단재 신채호와 석주 이상룡의 역사 인식과 비교하여 일부
                   주장처럼 『단군세기』가 이들에게 영향받아 근대 시기에 저작된 위작인지 여부를 검토한다.






                 Ⅰ. 서론




                   1911년, 해학 이기(李沂, 1848~1909)가 감수했던 『환단고기(桓檀古記)』가 그의 제자 운초 계
                 연수(桂延壽, 1864~1920)에 의해 발간되었다. 『환단고기』에는 『삼성기전(三聖記全」上·下, 『단군

                 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扶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 등 5종의 사서가 합본되었는데, 그
                 중에서 47대 2096년의 단군조선사를 기록한 『단군세기』는 고려말 대문장가이자 수문하시중에


                 * 인하대 융합고고학 전공 석박사통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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