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P. 158
환단고기 분과 2
올랐던 행촌 이암이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 강화도 해운당에서 저술한 단군조선의 역사서다.
행촌은 『단군세기』 序에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법도와 사학의 중요성, 자아 인식, 우주의 삼신과
인간의 탄생 원리, 사람의 본성과 목숨의 존재 원리, 성명정과 신교의 수행 원리 등 그의 다른 저서
인 『태백진훈(太白眞訓)』에서 밝혔던 고려 道學의 심법, 그 연장선에서 고려 선비의 정신과 고려의
道, 되찾아야 할 역사 정신을 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행촌 이암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떤 과정속에 『단군세기』를 저술하였는지 살펴보면서 그가 우리에게 남긴
『단군세기』의 의미와 사료적 가치, 실재성을 살펴본다.
Ⅱ. 천보산과 청평산
1. 천보산 결의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를 저술하게 된 과정은 행촌의 고손자 이맥(李陌·1455~1528)이 쓴 「태
백일사」 고려국본기에 전한다.
A. 행촌 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서 유람을 하다가 밤에 태소암(太素庵)에서 묵게 되었
다. 그곳에 소전(素佺)이라 하는 거사가 기이한 옛 서적(奇古之書)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명(李茗), 범장(范墇)과 함께 신서(神書)를 얻었는데, 모두 환단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의
1)
진결(桓檀傳授之眞訣)이었다. (이하 밑줄은 필자)
천보산 태소암에서 소전거사를 만나 옛 서적과 역사의 道를 전하는 정수, 진결(眞訣)을 얻은 행
촌은 이를 바탕으로 『태백진훈』과 『단군세기』, 이명은 『진역유기』, 범장(범세동)은 『북부여기』를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천보산 결의’로도 불리는 이 사건이 일어난 해는 1335년으
로 행촌의 나이 39세였다.
2)
이명의 『진역유기』를 저본으로하여 조선 숙종 때 『규원사화』를 쓴 북애(北崖)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전에 청평산인 李茗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고려 때의 사람으로 그에게 『震域遺記』 3권이 있
었는데 이것은 朝代記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옛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다. 일연이 지은 삼국
유사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그 중에는 仙家의 말이 많이 있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는 神
1)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태백일사」(대전: 상생출판, 2012), 25~35쪽.
2) 「杏村先生年譜」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