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P. 147
한반도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조작하고 날조한 것이다 배종덕
濟)의 위치는 有名海 동안에 있는 다마나(玉名)市를 중심으로 후나야마(船山)고분이 있는 일대로 비
정된다. 16)
2. 계체(繼體) 6년 (512년) 12월조 임나국의 상치리(上哆唎), 하치리(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婁)의 4縣 비정
계체(繼體) 6년 (512년) 12월조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치고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상치리(上哆唎), 하치리(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婁)의 4縣을 청하였다. 다리국수인 수적신압
산이 아뢰기를 “이 4현은 백제에 근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 4현은 아침
저녁으로 교통하기 용이하고 닭과 개의 소리 어느 쪽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
※ 백제와 임나 4현이 가까이 있어 기르는 가축의 소리도 어느 집에서 나는지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은 백제와 임나 4현이 거의 한 동네, 같은 마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백제와
임나국의 상치리, 하치리, 사타, 모루의 4현은 모두 규슈에 있었던 분국들로 서로 가까이 있었다.
※※ 「역설의 한일 고대사 任那新論」에서 김인배·김문배 두 저자는 上哆唎, 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
婁)의 4縣을 규슈의 有明海 인근의 지명들로 비정하고 있다.
1) 上哆唎(상치리): 「雄略紀」 21년(477년)조의 分註에 “久麻那利는 任那國의 下哆呼唎縣의 別邑
이다.”라고 한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呼의 개입 여부와 관계없이 上·下哆呼唎와 上·下哆唎는
같은 지명으로 보인다. 또 「欽明紀」 元年(540년) 9월조에도 繼體 6년(512년)의 이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규슈 有明海의 千束藏藏島의 上大戶丿岬에 비정된다. 이 千束藏藏
島의 위치는 규슈의 구다라가 위치한 현재의 다마나(玉名)시를 중심으로 하여 그 일대에서 바다쪽
으로 약간 아래쪽에 건너다보이는 大矢野島와 宇土 반도 사이에 끼인 一島嶼이다. 17)
2) 下哆唎(하치리): 이 지명은 上哆唎에 대응되는 이름으로, 이 역시 有明海의 천초상도에 있는
下大戶丿岬에 비정되며, 그 이름에 걸맞게 上大戶丿岬이 있는 千束藏藏島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
고 있다. 18)
3) 裟陀(사타): 이 지명은 天草下島(天草上島)의 서편에 거의 나란히 붙어 있는 더 큰 섬)의 早田에
비정된다. 裟陀는 일본음으로 「サタ」인데, 어음상 早田(ソウタ)와 유사하다. 즉 tsao-ta>sao-ta>
sou-ta>sa-ta로의 變轉을 유추해 볼 수 있다.(현재는 早田을 訓讀하여 はやた(하야타)로 통용하고
있다.) 19)
16) 김인배·김문배(1995, 367쪽; 조희승 『초기 조·일 관계사』 上, 173쪽
17) 김인배·김문배(1995), 556쪽
18) 김인배·김문배(1995), 557쪽
19) 김인배·김문배(1995), 557쪽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