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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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1
이 있어 능히 주술로서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라 불렸다.
(『북부여기 하』) 37)
임술년에 즉위한 고무서도 ‘소해모수’라는 별칭이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해모수 바라기’ 또는
‘동명 바라기’, ‘해모수 또는 동명 따라하기’와 같은 문화적 밈 현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
렇듯 고두막의 존재는 해부루가 왕권을 내어주고 가섭원으로 천도하여 동부여를 건국하게 되는
배경이었다. 고무서의 사위였던 추모 역시 고두막의 인생을 참고하며 민심을 관리했다고 볼 수 있
다. 이른바 ‘동명신화’는 한국사에서 권력의 미란다(miranda)와 크레덴다(credenda) 38) 를 잘 활
용한 예(例)라 할 수 있다.
동부여 건국은 고두막측에서 군대를 동원한 압박은 있었으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없었다. 해
부루의 신하인 아란불의 중재로 평화적 합의가 있었고, 아란불의 꿈속 계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고
두막이 천부(天符)의 권한을 이어받았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고두막의 출신에
중국 문헌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북이(北夷) 탁리국왕(橐離國王)의 시비(侍婢)가 임신하자 왕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시비가
말하기를, “닭과 같이 기운이 창성한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
다. 이후 아이를 낳아 돼지우리 안에 버렸더니 돼지들이 숨을 불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다시 마
구간 안에 두어 말이 그를 밟아 죽이게 하려 하였으나 말들도 숨을 불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왕
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이 아닐까 의심하여 아이의 어머니에게 데려가도록 하여, 노축(奴
畜)으로 삼았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여 우마를 돌보도록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았기에
왕은 〔동명이〕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 죽이고자 하였다. 동명이 도망쳐 남쪽으로 표수(淲水)
에 가로막히자 활로 물을 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져 뒤쫓던 병사들은 건널 수 없었다. 부여(夫餘)에 도읍을 세우고 왕 노
릇을 하였기 때문에 북이(北夷)에 부여국이 있게 되었다.(『논형』 「길험편」) 39)
『후한서』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책에 따라 탁리국, 색리국, 고리국 등으로 다르게
37) 『北扶餘紀下』 : 壬戌 元年(2275, BC59) 帝卽位于卒本川, 與父老會于白岳山, 立約祭天, 頒行事例, 內外大悅.帝生而
有神德, 能以呪術, 呼風喚雨, 善賑, 大得民心, 有小解慕漱之稱.
38) 권력의 ‘미란다’는 권력을 신비롭고 성스러우며 감탄할 만한 것으로 미화하여 정서적·비합리적 측면에 호소하는
것이고, 권력의 ‘크레덴다’는 권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시켜 그 존속에 동의케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측면에 호소한다. 이러한 ‘미란다’와 ‘크레덴다’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내면으로부터 복종시킨다.
39) 『論衡』 吉驗篇 : 北夷橐離國王侍婢有娠, 王欲殺之. 婢對曰:「有氣大如鷄子, 從天而下, 我故有娠.」. 後産子, 捐於猪溷
中, 猪以口氣噓之, 不死. 復徙置馬欄中, 欲使馬藉殺之, 馬復以口氣噓之, 不死. 王疑以爲天子, 令其母收取, 奴畜之, 名東明,
令牧牛馬. 東明善射, 王恐奪其國也, 欲殺之. 東明走, 南至掩淲水, 以弓擊水, 魚鼈浮爲橋, 東明得渡. 魚鼈解散, 追兵不得渡.
因都王夫餘, 故北夷有夫餘國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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