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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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소암본>의 『삼일신고』가 있다. 이암은 이명 가 어떻게 간직되어 전해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기
과 범장과 같이 천보산에 갔다가 태소암에 야숙하 록되어 있는데, 봉장기는 대조영의 손자 대흠무(발해
던 중에 여러 기이한 고서[기고지서奇古之書]를 얻었 문왕이고 연호는 대흥) 대흥 3년(739년)에 『삼일신고』가
다. 그 중에 전문 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가 있 후대에 영원히 전수되기 위해 태백산 보본단 돌집
었는데, 이것이 <태소암본>이다. <태소암본>의 『삼 속에 간직될 수 있도록 적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일신고』는 원래 분장되어있지 않았는데, 행촌 자신 석함石函에 비전되어 오다가 ‘백봉’이라는 도인이 백
이 “일왈一曰 허공虛空, 이왈二曰 일신一神, 삼 두산에서 10여 년간의 기도 끝에 발견하여 제자를
왈三曰 천궁天宮, 사왈四曰 세계世界, 오왈五曰 통해 단군교에 보내진 것이다. <발해 석실본>의 『삼
인물人物”로 분장한 것이다. 일신고』 전문 366자는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
⑤ <태소암본>의 『삼일신고』는 후손에게 전해지 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오훈五訓으로 분
다가 조선 중종 때 일십당一十堂 이맥(1455년~1528년) 장되어 있다.
이 소장하게 됐고, 이것이 1520년에 편술한 『태백 ㉡ <고경각신사기본古經閣神事記本>
일사』<소도경전본훈>에 실리게 됐다. 여기에서 백봉이 보낸 두암으로부터 대종교 홍암 나철이
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는 “제일장 허공虛空 삼 친수親受 받은 <신사기>다. 이는 어느 때 누가 작성
십육자, 제이장 일신一神 오십일자, 제삼장 천궁天宮 했는지를 모르지만, 조화기造化記, 교화기敎化記, 치
사십자, 제4장 세계世界 칠십이자, 제오장 인물人物 화기治化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교화기’
일백육십칠자”(『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안 에 『삼일신고』의 전문이 들어있는데, 발해의 석실본
경전 역주 참조)로 분장되어 있다. 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발해 석실본>과 함께
⑥ 대종교의 『대종교중광60년사』에 의거해 보면, 홍암 나철에게 전해진 것이다.
<발해석실본>의 『삼일신고』와 <고경각신사기본>의 출처가 다른 세 자료는 『삼일신고』의 시작부분
『삼일신고』는 1906년 1월 대종교의 중광重光 교조 이 조금 다르다. <고경각 신사기본>의 「삼일신고」
인 홍암弘巖 나철羅喆(1863~1916)이 백봉白峰의 제자 는 “主若曰〇爾衆”으로 시작하고, <발해 석실본>
백전佰佺(호는 두암頭巖)이라는 노인을 통해 전해 받았 은 “帝曰元輔彭虞”으로 시작하고, <태백일사본(태
다고 한다. 소암본)>은 “帝曰爾五加衆”으로 시작한다. 나머지
㉠ <발해석실본渤海石室本>의 『삼일신고』 내용은 세 자료가 일치하고 있고, 다만 후반부의 어
발해국 제3대 무황제(737-793)가 백두산 석실에 봉 구 몇 개만이 앞뒤가 바뀌어 있다. 즉 <신사기본>과
장封狀한 신고神誥를 말한다. <발해 석실본>에는 천 <발해 석실본>은 “진성무선악眞性無善惡”, “진명무청
통天統 17년(서기 715) 3월 3일, 발해의 왕 대조영이 탁眞命無淸濁”, “진정무후박眞精無厚薄”으로 되어 있지
『삼일신고』에 대해 친히 어제 찬을 지었고, 신하인 만, <태백일사본>은 “진성선무악眞性善無惡”, “진명청
임아상이 주석을 달았으며, 아우인 대야발이 서문 무탁眞命淸無濁”, “진정후무박眞精厚無薄”으로 되어 있
을 지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삼일신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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