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사마천 사기에 나타난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는 제나라와 진나라 사이다(燕內措齊晉)

[출처] 수구리의 우리 고대사 : 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 https://tnrnfle.tistory.com/11


※주) 연내책제진(燕內措齊晉)은 '연나라는 제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끼여 있다'는 표현이다 



■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를 알아야 전국시대 연나라를 이해할 수 있고

위만조선과 한사군(낙랑군 진번군 현도군 임둔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사마천 사기 내용에는...》

1) 주 무왕이 계(북경)에 연나라를 봉했기에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는 북경 지역에 있었고,

전한, 후한 시대의 제후국인 연나라 위치도 변하지 않았으니 변함없이 북경 지역에 있었다고 알려졌다

2)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는 고조선과 이웃해 있었고,

전국시대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 땅을 빼앗아서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을 설치했다

3) 한나라 시대에는 진시황의 요동군을 패수를 기준으로 나누어

- 패수 서쪽은 한나라 요동군으로 하고,

- 패수 동쪽은 옛 진나라의 땅이지만 비워두고 내버려 둔 진고공지(요동외요, 상하장, 상하운장)이다

4) BC 194년에 전한의 연나라 사람 위만이 진고공지(秦古空地)에 위만조선을 세웠다

5) BC 108년에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진고공지에 한사군(낙랑군, 진번군, 현도군, 임둔군)을 설치했다

따라서 위만조선과 한사군 위치 결정의 중요한 기준점은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

■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북경은 제나라(산동성 제남시 지역)와 진나라(산서성 운성시 지역) 사이가 아니니

춘추시대에 연나라는 북경지역에 없었다

1) 춘추시대 진(晉)나라가 망하고 조(趙), 위(魏), 한(韓) 세나라로 분리되면서 전국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진(晉)나라가 나타나는 시기는 춘추시대다

2) 산동성 태산북쪽 제남시 지역에 제(齊) 나라가 있었고, 산서성 서남부 운성시 지역에 춘추시대 진(晉)나라가 있었다.

3) 진(晉)나라와 제(齊) 나라 사이의 중간이 하남성 정주시 부근인데, 정주시에서 약 700km(약 1천 5백리) 북쪽이 북경이다.


5) 따라서 북경은 연내책제진(燕內措齊晉)의 제나라와 진나라 사이가 아니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북경지역에 없었다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三十四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태사공왈(太史公曰) >』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蠻貉)과 가깝고 안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끼어 있었다.

또한 험하고 강한 나라 사이에서 가장 약소한 나라로서 거의 몇 번이나 망할 뻔했다.


  [원문] 燕 [外]迫蠻貉, 內措齊晉. 崎嶇彊國之閒, 最為弱小, 幾滅者數矣.



■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산서성 운성시와 산동성 제남시 사이의 하남성에 춘추시대 연나라가 있었다


1) 연소공세가에서 사마천이 연나라는 진(晉)나라와 제(齊) 나라 사이에 끼여 있었다고 했으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하남성 황하 부근에 있었다

2) BC 675년 연나라 군대를 중심으로 안양시의 위(衛)나라, 상구시의 송나라와 공동으로 낙양의 동주 혜왕을

공격하여 혜왕의 동생 희태를 주나라 왕으로 세웠고, 1년이 지난 후에 정주시의 송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했으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정주시 부근의 하남성 황하 부근에 있었다

(만약 낙양에서 북쪽으로 700km정도의 1천 5백리 거리의 북경에 연나라가 있었다면, 안양시의 위衛,

상구시의 송宋나라와 연합하여 낙양을 공격하거나 정주시의 정鄭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三十四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나라 장공 16년(BC 675년) 송宋나라, 위衛나라와 공동으로 주 혜왕을 공격하자 혜왕이 온溫으로 달아났고, 혜왕의 동생 희퇴(姬頹)가 주나라 왕이 되었다. 연나라 장공 17년(BC 674년) 정나라가 연나라의 중보(仲父)를 잡고 혜왕을 주나라로 돌려보냈다(혜왕이 주나라 왕으로 복귀했다)



[원문] 燕莊公十六年 與宋衛, 共伐周惠王, 惠王出奔溫, 立惠王弟穨為周王. 燕莊公十七年 鄭執燕仲父而內惠王于周.




■ 춘추좌전에 따르면 한(후한)나라 동군(東郡) 연현(燕縣)인

하남성 연진현(延津縣)에 춘추시대 연나라가 있었다



춘추좌전에서 BC 718년에 위(衛)나라가 연(燕)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정(鄭)나라를 정벌했는데...

연(燕)나라 위치가 후한의 동군(東郡) 연현(燕縣)으로 주석되어 있으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하남성 연진현(延津縣)에 있었다



☞ 『 < 춘추좌전(春秋左傳) 노나라 은공(隱公) >』

노 은공 5년(BC 718) 정(鄭)나라가 위(衛)의 교외를 침공하여 동문의 전쟁을 보복하니 위(衛) 나라가 연(燕)의 군대를 거느리고 정(鄭)을 토벌하였다. [주注] 연(燕)은 남연국(南燕國)인데, 지금(후한)의 동군(東郡)의 연현(燕縣)이다

※주) 황하지역인 연진현에 있었던 춘추시대 연나라를 남연국이라 부르는 중국 고대 학자들이 많이 있다

후한 동군 연현(燕縣)은 전한의 동군 남연현(南燕縣)인데, 하남성 연진현(延津縣) 교행장촌(喬杏庄村) 일대다



[원문] (魯)隱公 五年 鄭人侵衛牧 以報東門之役 衛人以燕師伐鄭 【注】南燕國,今東郡燕縣.




■ 춘추시대 말에 진제(晉齊) 전쟁이 발생하니, 하북성 중남부의 형태시 지역으로 연나라를 옮겼다



1) 하북성 한단시 남쪽인 하남성 안양시는 위(衛)나라 영토였으니 BC 664년 산융의 연나라 침입때

제환공에게 받아서 연나라 영토가 된 지역은 하북성 중남부인 한단시 형태시 부근으로 추정된다



2) BC 589년, BC 557년, BC 550년 진(晉)나라와 제(齊)나라가 전쟁을 하니, 진(晉)나라와 제(齊)나라 사이에

있었던 연진현 연나라는 하북성 중남부의 한단시와 형태시 부근으로 도읍을 옮겼다



3) 하북성 중남부의 한단시와 형태시 부근으로 도읍을 옮긴 연나라는 일시적으로 북연(北燕)으로 불리었다

(춘추좌전 내용)



4) 춘추좌전에서 BC 544년에 북연이 최초로 등장하고, BC 530년이 북연의 마지막 기록이니

연나라가 하북성 중남부로 도읍을 옮긴 시기는 BC 550 - BC 544년 경으로 판단된다


5) 이 시기의 연나라 군주가 24대 문공(文公, BC555 - BC 549 )이니

하남성 연진현에서 하북성 중남부 한단시나 형태시 부근으로 연나라 24대 문공이 도읍을 옮겼다고 본다


※주) 수경주 역수조에 (水經注 「易水」)

昔燕文公徙易 옛 연나라 문공(BC 555 - 549)이 역(易)으로 옮겼다 는 내용이 있다

(역易이 임역臨易이며, 역수易水는 하역수下易水로 형태시 남쪽의 사하沙河로 비정된다)




■ 연(燕)나라를 언(匽)이라고 기록한 중국 고대 사서는 없으니 언(匽)은 연(燕) 나라가 될 수 없다


1) 죽서기년, 춘추좌전, 사마천 사기 등 중국 고대 사서에서 연(燕)나라를 언(匽)으로 기록한 사서는 없으니

언(匽)은 연(燕) 나라가 될 수 없다


2) 중국 하북성 보정시와 북경부근에서 고고학 유물을 발굴했으니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를 확정할 수 있는

연(燕)의 금문은 발견되지 않았다(춘추시대 연나라는 호타하를 넘지 않았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3) 보정시와 요령성 대능하, 객좌현에서 언匽)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하북성 보정시 부근에서 출토된 언왕직과(匽王職戈)에서 언왕직(匽王職)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요령성 대능하 유역에서도 언왕직검(匽王職劍)에서 언왕직(匽王職)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요령성 개좌현에서 주나라 제후의 그릇 모양과 다른 언후우(匽侯盂, 언 제후의 그릇)에서 언후(匽侯)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주나라 제후의 그릇은 손잡이가 세로 방향인데, 언후의 그릇은 가로방향이다)



4) 연(燕)의 금문이 발견되지 않으니 언(匽)이 연(燕)이라고 중국이 주장해서

언왕직과(匽王職戈)를 연왕직과(燕王職戈)로 부르고, 언왕직검(匽王職劍)을 연왕직검(燕王職劍)으로 부르고

언후우(匽侯盂)는 연후우(燕侯盂)로 중국이 공직적인 명칭으로 사용한다

(언匽은 서주 말 주 목왕 시대에 동이족 왕 이었던 서언왕의 언偃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글자이기에

언왕匽王이나 언후匽侯는 연나라 군주가 아니라, 고조선의 군주로 추정할 수 있다)



■ 남연국(南燕國)은 고대 사서에 나타나지 않으니 춘추시대 남연국(南燕國)은 존재하지 않았다



1) 연(燕)나라를 북연이라 하고 황제의 후손인 길(姞)씨의 연(燕)나라를 남연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춘추시대 연나라가 하남성 연진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여 주장한 것으로 본다


2) 황제의 후손인 길(姞)씨의 연(燕)나라가 남연(南)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정나라 목공의 모친의 이름이 연길(燕姞)이니 연(燕)나라의 길(姞)씨로 추정하는 근거없는 주장이다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2024년 종교문화여행 치유순례 대한뉴스 2024-11-06 1,495
공지 2024세계개천문화대축제(10/3~10/9) 뭉개구름 2024-09-13 4,706
121 박경호 mp3 음원 발매 !!! ajsna9504 2024-10-25 41
120 ‘開天’개천을 광장으로, 시장으로! (2) 살구나무 2024-10-04 87
119 ‘개천開天’을 광장으로, 시장으로! (1) 살구나무 2024-10-04 87
118 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대한사랑 2024-07-15 197
117 기와에 쓰인 길상구로 코미디하는 유사사학 한상고사 2024-06-02 238
116 비류백제=예부여의 역사 한상고사 2024-05-29 216
115 낭야는 어디에 있었는가? 한상고사 2024-05-13 312
114 세종시 인문학 교양강좌 시즌1 <동학의 잊혀진 꿈> (2024.5.11.토.오후 4:30) 대한뉴스 2024-05-08 224
113 주최 측의 장난?! 살구나무 2024-04-16 271
112 자전거의 ‘역설逆說’ 살구나무 2024-04-05 303
111 건물이 올라가네 살구나무 2024-03-27 267
110 모든 사료는 왕검성에 요동군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한상고사 2024-03-15 307
109 고대 타밀인은 한국인이다 한상고사 2024-02-24 356
108 4세기 전반기에 고구려가 중국의 영토를 뺏었는가? (소위 낙랑군 교치설은 근거가 있는가?) 한상고사 2024-02-11 340
107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대한사랑 2023-10-13 486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