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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檀君)은 신화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이다

                                단군(檀君)은 신화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이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辛相龜

 

   서울대 법대 제1대 학장을 역임한 고 최태영(崔泰永, 1900-2005) 박사는 자기의 절친한 친구인 고 이병도(李丙燾) 박사가 일제강점기에 식민사학자가 되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자 70세부터 우리 상고사를 심층적으로 조사 연구했다.
   그 결과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 인물임을 극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이병도 박사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여, 이병도 박사가 타계하기 3년 전인 1986년 7월 9일자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인물임을 밝히고 한민족에게 사과하는 내용의 논설인 <단군은 신화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를 발표해 과거의 식민사관을 수정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2016년 3월 30일자 A25면에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라는 불필요한 논쟁을 다시 벌려 재야 민족사학자인 필자를 황당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일보 기사를 그대로 소개하오니 읽어보시고 각자 건해를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 기사-1>
                       日 학자들 "단군, 후대에 날조"… 최남선 "역사 반영한 神話"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 
                                      조선일보, 2016.3.30일자. A25면.    
 
                       조선시대 유학자 "황당하다" 비판하면서도 開國시조 인정
                       최근 中 학계도 연구 본격화… 신화 통해 역사 재구성해야


  언제부터인가 단군(檀君)에 대한 이야기를 '단군신화'라고 하면 '일제 식민사학의 아류(亞流)'로 비난받게 된다. 신화란 허구를 뜻하는데, 일제가 단군조선의 역사를 날조로 돌리고 한국 역사의 유구함을 부정하기 위해 단군신화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단군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부터이다. 대개는 '단군전설'이라고 했다. '단군신화'라는 말은 한말 이래 한국인 학자들이 사용했다. 1908년 단재 신채호가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신시(神市)시대에는 신화에 의하여 인민을 규합하였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당시 동아시아에는 신화를 가진 국가가 오랜 역사를 가진 문명국이란 인식이 있었다. 동양보다 앞선 서양문화의 토대가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군신화란 말이 타당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에 편찬된 '삼국유사'이다. 단군은 하늘신의 아들인 환웅과 곰여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조선을 1500년간 통치하다가 아사달의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비현실적 스토리는 설화의 장르로 보았을 때 신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화라고 해서 역사와는 무관한 것일까.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단군신화는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단군의 존재와 고조선의 실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군을 개국(開國) 시조로 인정해 단군에서 한국사의 서술을 시작함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단군 제사를 정기적으로 거행했다. 한말에 단기(檀紀)를 사용하고 개천절을 제정하는 등 일제 침략에 대항할 민족적 구심점으로 단군을 부각시킨 것도 단군 인식이 확고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을 강점한 일본인들의 관점은 달랐다. 일본인들 간에도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하나는 단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단군을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의 동생이라고 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뿌리가 같기 때문에 일제의 한국 강점은 과거 역사로의 복귀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내선일체'라는 동화정책의 논리이다. 반면 단군은 가공의 인물이며, 단군전승은 민간에 전해지는 전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있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나 나카 미치요(那珂通世) 같은 일본 관변학자들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들은 단군은 고구려 또는 고려시대에 날조된 것이며,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조선의 역사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식민사학의 논리는 한국인의 자기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위협했다. 그래서 한국 지식인들은 단군 부정론을 비판하고 단군의 역사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최남선이다. 그는 서구 신화학 이론을 도입하여 단군전승은 오래된 민족의 신화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조선 시조로서 단군의 위치를 확실히 했고, 단군왕검이란 명칭을 통해 고조선이 제정일치 단계의 사회라고 주장했다. 경제사학자 백남운은 단군신화를 원시공동체 말기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식민사학의 논리는 많이 극복됐다.
   최근 중국 학계도 단군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학계는 단군 긍정론과 부정론이 있다. 전자는 단군신화에서 중국적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고조선 문화의 독자성을 간과한다. 후자는 단군과 함께 단군조선의 실재성을 부정한다. 중국 학계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이다.
   건국 신화에는 역사적 사실이 많이 담겨있다. 단군전승도 신화인 동시에 역사이다. 단군이 신화인가 역사인가라는 논란을 접어두고 신화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공동 기획 : 한국고대사학회>


                                                    <조선일보 기사-2>
                                   "桓檀古記 등 역사서에 나온 실존인물" 주장도
                                       이선민, 조선일보, 2015.3.30일자. A25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단군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이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환단고기(桓檀古記)' 등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들이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단고기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묶어서 계연수란 인물이 1911년 간행했다고 하며 1979년 이유립이 필사 영인본을 출간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환단고기는 단군이 47대에 걸쳐 2096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며 역대 단군의 이름과 재위 기간을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출간 경위가 불분명하고 근대 이후 등장한 용어들이 상당수 사용된 점 등을 들어 사료적 가치를 의심하고 있다.
   최근 일부 고고·역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중국 네이멍구와 랴오닝성 일대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을 고조선·단군과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네이멍구 츠펑(赤峰)과 랴오닝 차오양(朝陽) 인근에 기원전 4000~2500년 무렵 나타났던 홍산문화(후기 신석기)와 그 뒤를 이은 하가점 하층문화(초기 청동기)가 단군신화나 고조선 성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호랑이·곰 토템 유물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한다. 또 홍산문화 지역에 자리 잡았던 환웅족(族)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토착 세력과 함께 고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이해한다. 단군신화는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의 이 같은 변화 과정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지켜야지, 일본이나 중국에게 지켜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기들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고,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여, 우리 한민족을 분노케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강단사학자들이 우리 상고사를 유일하게 밝혀주고 있는『환단고기(桓檀古記)』를 위서로 단정하고 아예 보지도 않아 우리 민족사학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동북아 3국의 역사전쟁에서 패한다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모든 애국 시민들이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만 대한민국이 동북아 3국의 역사전쟁에서 이기고 머지않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자이자 민족사학자인 고 최태영 박사는 1900년 황해도 장련에서 태어나 1954년 학술원 창립 때부터 활동해 온 최장수 학술원 회원이다. 1921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예과를 졸업하고, 1921-1924년에는 같은 대학 법학부에서 법철학과 상법, 법학사를 전공했으며 1958년 중앙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에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교수로 부임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법학 정교수가 되었다.
  광복 뒤에는 법전 편찬위원, 고시 전형위원이 되어 헌법을 제외한 각종 법과 고시령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서울대와 부산대 개교에도 참여했다. 서울대 법대 학장과 중앙대 법정대학장도 지냈다.
  고인은 한국 근대 법학사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노년에는 한국 상고사(上古史) 연구에 매진함으로써 이른바 ‘재야 사학의 대부’로 널리 알려졌다. 고대사 연구 성과로는 ‘한국상고사’ ‘인간 단군을 찾아서’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 등의 저서가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원철(77·의사), 딸 정철(70), 사위 서권익(70·변호사) 씨가 있다.         
                                                            <참고문헌>
  1. 최태영,『한국상고사』, 유풍출판사, 1997.7.25.
  2. 최태영,『인간 단군을 찾아서』, 학고재, 2000.4.15.
  3. 최태영,『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 눈빛, 2000.9.25.
  4. 전승훈, “재야사학 代父 최태영 박사 ‘조용한 세상이별’ ”, 동아일보, 2005.12.5일자.
  5. 辛相龜, “해방 이후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의 판세 분석”, 아산톱뉴스, 2014.4.9일자.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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