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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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2현일까?
                       그렇다면 왜 72현일까? 이는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이 넘었는데, 그 가운

                     데 뛰어난 이들이 72명이라는 『사기』 「공자 세가」의 기록 때문이다. 이 72
                     현이라는 수에 대해서 이미 고려 초기부터 인지되었고, 조선 건국에 반대

                     한 수많은 고려의 유신 중 상징적인 인물로 72현으로 집약했던 것으로 보
                     인다. 72현의 명단은 확정되지는 않았다.

                       두문동 72현이 재평가받게 된 것은 영조와 정조 이후부터이다. 정조대
                     인 1783년, 당시 개경부유수였던 서유방(徐有防)이 두문동 72인 중 조의생
                     (曺義生), 임선미(林先味)와 맹(孟)씨(이름이 전해지지 않음) 세 명을 숭절사(崇節祠)에

                     배향할 것을 상소하여 그대로 배향이 시행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
                     다.



                     두문동 72현의 현대적 의미

                       충의와 절의는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이
                     다. 특히나 배운 사람이나 기득권층이라면 공동체에 대한 자신들이 짊어

                     져야 할 책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문명사적
                     인 대전환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고, 적은 희생으로 왕조 교체
                     와 민생 안정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에 대한 충절과 신념을 지키며

                     죽음으로 또는 은둔으로 저항했던 ‘두문동 72현’으로 대표되는 고려 충신
                     들의 삶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귀감이 될 것이다.

                       다음 호부터 두문동 72현 개인의 삶과 사상에 대해 한 분씩 살펴보려
                     한다. 더높은 고려 충신의 매운 얼과 선비의 절개를 우리들 가슴에도 한
                     번 담아보자. 더 나아가 대한사랑이 추구하는 역사광복 운동의 의미를 되

                     새겨보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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