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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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면의 쌍성총관부를 탈환하였다. 하지만 자주권을 되찾고 내정을 개
                   혁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공민왕에게 기득권 세

                   력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홍건적들이 원의 토벌에 밀려 고
                   려를 침입하여 한때 개경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1350년 경인년 봄, 고려

                   해안에 모습을 드러낸 왜구들은 끊임없이 고려를 침범하였다. 이들의 침
                   입은 조선 초기까지 대략 50년간 지속되어 약 4백 건 가까이 발생하였다.

                   1350년에만 5차례 침략이 있었다.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 국토는 전란
                   에 휩싸이고 백성들은 거듭 피난 보따리를 싸야 했다. 공민왕의 개혁은 그
                   기회를 잃었고 나라는 서서히 기울어져 갔다.

                     당시 고려는 불교의 타락과 권문세족의 횡포로 인해 전제 개혁, 노비 변
                   장, 사원 정리 등 상호 연관되는 사회 핵심 문제들이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과제였다.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의 토지는 강과 산천을 경계로 할 정도
                   였으니 백성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인들 있었을까. 하나의 토지에 수조권
                   을 행사하는 주인이 여럿이라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게 없어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지배층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
                   도 없는 묵은 세력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고려말 요동의 철령을 경계로 한 국경선과 철령위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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