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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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것은 발해가 곧 말갈이며, 말갈이 곧
지역 곳곳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일 발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어났다. 고구려의 왕족이나 귀족 등 핵 다.
심집단들은 당나라의 산개정책에 따 여덟 번째, 발해왕은 일본왕에게 국
라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주거지 서를 보내면서 고려 국왕으로 표현하
역에 남아 있었던 말갈계 고구려인들 여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분명히 하고
이 고구려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 있다. 또한 일본은 8세기 초 발해를 지
여할 수 있었고, 그들 중심으로 발해 칭하는 말로 ‘말갈국’이라는 표현을
가 건국이 되었다. 그래서 당나라에서 사용한다. 그런가하면 762년 일본열
는 처음에 말갈국이라고 불렀고, 신라 도의 동북변경에 건립된 일본 미야기
도 ‘발해 말갈’ 혹은 ‘말갈’이라고 불렀 현의 다가죠비에는 ‘말갈국’이라는 표
다. 그러다가 최치원 때 와서 발해를 현이 있다. 이것이 발해국을 의미하
‘북국’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사불 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정황으
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 나오 로 볼 때 발해국을 지칭할 수도 있고
는 말로 바로 발해에서 스스로 강대국 아니면 말갈족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
을 자처하면서 신라보다 윗자리에 앉 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일본의 말갈(발해)
아야 된다고 당나라에게 정식으로 요 인식을 통해 일본과 말갈 간의 관계를
청하였지만, 당나라는 발해의 요청을 추정할 수 있다.
거절하였고 이에 최치원은 너무나 감 아홉 번째,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읍한 나머지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 의해 멸망하자 많은 고구려 유민들과
北國居上表)’라는 표문을 지어 당나라 황 말갈인들이 신라로 귀순한다. 그런가
제에게 올리게 된다. 즉 이것은 발해가 하면 발해가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자
위에 있도록 허락하지 않은 당나라 황 많은 발해 유민들과 말갈인들은 고려
제에게 감사하는 표문이다. 당시 당나 로 귀순하게 되는데, 여기서 일정한 관
라인과 신라인들은 발해인들을 말갈 계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 그 관계를
인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헤아려 보면 말갈에 대한 역사 귀속의
그리고 신라인들은 발해를 ‘북국’이 문제와 민족의 특성을 추정해 볼 수
라고 표현하면서 신라와 발해를 남·북 있을 것이다.
국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열 번째, 말갈과 동시대에 같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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