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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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구려와의 관계에서 고구 같은 관등제도도 이때 나왔기 때문이
려가 성립되기 전에 이미 말갈부락이 다.
존재했으므로 그들은 어떤 존재인지 세 번째, 『삼국사기』「백제본기」<온
와 백제와 신라와는 다르게 우호적인 조왕조> 기록에 보면 ‘국가 동유낙랑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고구려를 북유말갈(國家 東有樂浪 北有靺鞨)’이라고
위해 목숨 걸고 싸웠고, 고구려 멸망 해서 백제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
후에는 고구려 부흥 운동을 전개하는 쪽에는 말갈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것
말갈은 고구려의 피지배계층인지 아 은 말갈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내용이고,
니면 고구려 변방 주민들에 대한 비칭 여기서 낙랑은 요서 지역에 있었던 한
혹은 범칭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다. 즉 한사
고구려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서 지역에 있
만 아니라 후대인 발해사와도 밀접한 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내용으로 백제
관련이 있다. 의 초기 건국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
두 번째, 백제와의 관계에서 백제 건 서 지역이었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는
국 초기부터 말갈은 백제를 괴롭혔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말갈과 낙랑
온조왕은 건국 초기 가장 집중했던 것 은 서로 인접해 있었고 관계 또한 우
이 말갈과의 대외관계였다. 어떻게 보 호적이었으며, 특히 낙랑의 요청으로
면 백제는 말갈과의 전쟁 수행을 통해 백제를 공격하는 행태도 보였다. 이것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졌고, 그래 은 무엇을 말하는가? 말갈과 낙랑이
서 삼국 중에서 가장 빨리 최전성기를 동일한 종족 계통이거나 서로 이해 관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이왕 때가 계가 부합이 되었기 때문에 함께 동맹
되면 말갈과 이상한 평화 관계가 유지 을 맺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군조선
가 된다. 그래서 제기가 되는 것이 고 붕괴 이후 열국(列國)시대가 도래했을
이왕의 친말갈 정책은 고이왕이 말갈 때, 열국(列國)을 크게 두 가지 계통인
계가 아닌가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한 부여계(扶餘系)와 진계(震系)로 나눌 수
다. 만약 고이왕이 말갈계라면 이것은 있고, 같은 진계의 국가로 상당한 친
한국 고대사를 다시 써야 될 지도 모 연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를 일이다. 왜냐하면 백제는 고이왕 때 있다.
고대국가로의 기틀을 잡았고, 좌평과 네 번째, 신라와의 관계이다. 신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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