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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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만주 지역에 있었던 종족이 거란족                  1) 중국사서의 기록 : 『구당서』와 『신
             이다. 동일한 시대, 동일한 만주 지역                 당서』

             에 존재했었던 거란과 말갈의 관계를                     두 사서 모두 발해를 ‘발해국(渤海國)’
             통해 만주 지역 유목민족들의 특성과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당서』에는

             고구려와 발해 등과 어떤 친연성이 있                  “발해는 고구려 옛 땅에 세워졌으며
             는지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호는 발해라고 한다.”고 되어 있고,

                                                   『신당서』에는 발해의 정치, 경제, 사회,
             대진국과 발해국의 관계                          군사적 체계에 대한 기술에서 “발해라
               발해는 고구려의 멸망 이후 고구려                  는 국호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이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으로 세워졌다.                   러한 사료는 발해가 중국 및 다른 국
             초기 국호인 “대진국(大震國)”이라는 국                가와의 교류에서 자신을 발해로 칭했

             호도 고구려의 별칭인 “진(震)”을 계승                음을 보여준다.
             한 이름으로 해석된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국가임                    예종(睿宗) 선천(先天) 2년(A.D.713; 발해 고왕
             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15)에 낭장(郎將) 최흔(崔訢)을 보내어 조영

               중국사서 『구당서』에서는 발해를                   (祚榮)을 책봉하여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
             “진국(震國)”으로 기록하며, 발해의 건                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삼고, 아
             국자 대조영을 고구려 계승자로 묘사                   울러 거느리고 있는 지역을 홀한주(忽汗州)로

             하고 있다.                                삼아서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의 직(職)을 더
               『신당서』 등 다른 중국 사서에서는                 주었다. 이로부터 해마다 사신(使臣)을 보내

             대진국을 ‘발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어 조공(朝貢)하였다.
             는 발해가 대내외적으로 사용하는 국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호와 주변국의 기록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종(睿宗) 선천(先天) 연간 (A.D.712~713; 발
               발해가 국호라는 근거는 주로 중국                  해 고왕 14~15)에 사신(使臣)을 보내어 조영

             사서 및 발해의 대외적 활동과 관련된                  (祚榮)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左驍衛大將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이를                  軍渤海郡王)에 배수(拜授)하고, 거느리고 있는

             뒷받침하는 주요 자료이다.                        지역을 홀한주(忽汗州)로 삼아서 홀한주도독
                                                   (忽汗州都督)을 겸임시켰다. 이로부터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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