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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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의 접촉은 고구려와 백제보다는 기 신라인들의 세계관으로 보면 삼국
상당히 늦은 시기에 이루어진다. 이것 시대가 아니라 말갈을 포함하는 사국
은 초기 신라와 말갈은 서로 만날 수 시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없었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 여섯 번째,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
고, 특히 말갈의 침략에 대해 왕이 반 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는 신라
격을 지시하지만, 이것이 불가하다는 와의 동맹을 무시하고 신라까지 병합
여론이 있었다. 당연히 말갈의 침탈로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나당 전쟁이 일
백성들이 곤경에 빠져 있었다면 말갈 어났고 이제 한민족의 운명이 걸린 한
에 맞서 반격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판 승부가 벌어지는데, 매소성 전투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나 이유가 무엇인 서 신라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결국 당
지 안다면 말갈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나라 군대를 축출할 수 있었다. 그런
도움이 될 것이다. 데 당나라 군대에는 이상한 집단들이
다섯 번째,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고 섞여 있었다. 그들은 말갈병과 거란병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소위 말하는 통 이었다. 당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일신라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 흩어진 말갈족과 거란족을 흡수하여
을 회유할 목적으로 중앙군의 군사편 당군으로 결성하여 신라전에 투입한
제를 9개의 서당, 즉 9서당으로 구성 것이다. 당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하는데 9서당의 구성이 의미심장하다. 서 고구려군 선봉에서 싸웠던 말갈군
신라계 3개, 고구려계 3개, 백제계 2 들을 전쟁 이후 잔인하게 생매장시킨
개, 말갈계 1개로 구성된 9서당은 특 다. 이것은 그만큼 미웠던 대상이었다.
히 제 6서당이 ‘흑금서당’으로 그 구성 그런데 신라와의 전쟁에 버젓이 그들
원이 ‘말갈국민’이었다. 즉 삼국시대 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말갈인도 마
이후 후신라 시기에 중앙군으로 왕의 찬가지다.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
친위부대인 9서당을 구성할 때 그 여 에서 고구려를 위해 목숨 걸고 선봉에
섯 번째 서당을 오로지 ‘말갈국민’으로 서 열심히 싸웠던 그들이 이제는 당나
구성하였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라편이 되어 신라군을 공격한다는 것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규모만 달랐을 이다. 이때 등장하는 말갈은 그 전의
뿐 고구려·백제·신라와 동등하게 말갈 말갈과는 다른 존재인지 알 필요가 있
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7세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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