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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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동경유지로 주위 약 20리의 성지 다고 하였다. 남경 남해부의 위치를 요
(城址)와 궁전지(宮殿址)가 있다.”라고 하 녕성 해성시라고 한다면 지금의 학자
였다. 들이 함경도의 함흥, 북청으로 보는
1913년 장도빈은 송왕령성(宋王嶺城) 것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남경 남
을 답사하여 대진국의 동경자리로 추 해부가 요녕성 해성시에 있다는 것은
정하였다. 지금은 우수리스크로 불리 『요사』 「지리지」에도 분명하게 기록되
며 중국에서는 쌍성자(雙城子)라고 부른 어 있다.
다. 1860년 ‘중러북경조약’에 의해 러
시아 영토가 되었다. 쌍성자라는 명칭 해주는 남해군이며 절도사가 있다. 본래
은 동쪽과 서쪽에 2개의 성이 있어 그 는 옥저국의 영토이다. 고구려 때는 사비
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동쪽의 성은 성을 쌓았는데 당나라 이세적이 이곳을
부이단(富爾丹)이라 부르고 서쪽의 성은 공격한 적이 있다. 발해에서는 남경 남해
주이근(朱爾根)이라 부르며 4리 정도 떨 부라 불렀다.
어져 있다. 9세기 중기에 쌍성자는 발
해국의 중진(重鎭)이었다. 그러나 현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술
동성은 대진 때 축조되었고 서성은 을 오류라고 인식하고 있다. 구난희는
금나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 ‘『요사』 「지리지」로 본 요의 발해 지역
으며 송나라의 황제(휘종, 흠종)가 구금 재편’이라는 글에서 “『요사』가 두찬의
됐던 곳이라 하여 송황령(宋皇嶺) 또는 비판을 받는 첫 번째 원인은 한 항목
송왕령(宋王嶺)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내에 열거된 지명이 제각각이어서 지
1935년 스탈린의 측근인 국방인민위 명 간의 지역 편차가 과도하다는 점에
원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따서 보로실 있다. 발해를 다룬 지명에서도 허다하
로프로 개명했다가 1957년 우스리스 여 그 오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크로 다시 개명하였다. 라고 하면서 『요사』의 기록을 부정하
고 있다. 이는 대진국의 영토를 축소
3) 남경 남해부 시켜 보는 현 학계의 안목에 기인한 것
『환단고기』에서 “대진국 남경 남해 이지만 옥저에 대한 몰이해도 한몫하
부는 본래 옛 남옥저 땅인데 지금의 해 고 있다고 사료된다. 이유립은 일찍이
성현이다.”라고 하였다. 『신당서』에서 제 문헌을 검토하여 “동옥저는 함경도
도 남경 남해부는 옥저 고지(故地)에 있 대부분과 강원도 일대이고 북옥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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