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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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고 있으며 북한의 박시형도 이 설을 5) 서경(西京) 압록부(鴨淥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근간에 북한 『신당서』 「발해전」에서 “고구려의
의 채태형(蔡太泂), 장국종(張國鍾)은 함경 고지가 서경이고 압록부라고 부르며
북도 청진시 부거리설(富居里說)을 적극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
주장하고 있다. (正州)의 4주를 관할한다.”라고 하였고
“압록부는 조공도(朝貢道)이다.”라고 하
4) 남경(南京) 남해부(南海府) 였다.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에
『신당서』 「발해전」에서 “옥저의 고 “압록강 입구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
지가 남경이고 남해부라고 부르며 옥 리를 가고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동북
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의 삼주 쪽으로 30리를 거슬러서 가면 박작구
(三州)를 관할한다.”라고 하였고 “남해 (泊汋口)에 이르니 발해의 국경이 된다.
는 신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남 또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神
해부의 위치도 여러 가지 설이 있었는 州)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데 지금은 함흥설(咸興說), 경성설(鏡城說: 5경의 위치 중에서 지금까지 의견이
함경북도 청진 남쪽), 북청설(北淸說)로 압 일치되어 있지 않은 곳은 동경과 서경
축된다. 함흥설의 주창자는 정약용(丁 이다. 동경의 경우에는 훈춘설과 청진
若鏞)이고, 이후 와다 기요시(和田淸) 등 부거리설이 대립되어 있고 서경의 경
이 주장하여 오랫동안 유력한 설로 자 우에는 임강설(臨江說)과 집안설(集安說)
리 잡아 왔다. 함흥설도 함흥관내(지금 로 나뉘어 있다. 김육불은 『신당서』와
의 영광군)로 보는 설과 오늘의 영광군 『도리기』에 근거하여 서경 압록부의
과 함주군 경계에 있는 백운산성에 비 수주(首州)인 신주를 지금의 임강현(臨江
정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縣)으로 비정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임
담기양(譚其驤)의 『중국역사지도집』 강현성에서 발해 시기의 유물이 자주
도 함흥을 옥주로 표기하며 이 설을 쫓 발견되면서 여기서 성자리가 있었다는
고 있다. 경성설의 주창자는 마츠이(松 것을 확인하였으며 지금 학계에서는
井)인데 지금은 따르는 자가 거의 없다. 임강진을 서경 압록부와 수주인 신주
북청설은 김육불이 제기하였고, 이 설 의 소재지로 일치하게 인정하고 있다.
은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대부분의 학 집안설의 요점은 과거 집안 국내성
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한국의 학 (國內城)이 고구려의 정치 중심지였고 비
자들도 이를 쫓고 있는 추세이다. 록 고구려 유적이지만 유적 내용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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