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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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경 현덕부
중경 현덕부에 대해서 『환단고기』에 동녕로는 본래 고구려의 평양성이니 또한 장
서는 언급이 없다. 지금의 연구자들이 안성이라고도 부른다. 한나라가 조선을 멸하
다양한 주장을 하다가 지금은 돈화설 고 낙랑군과 현도군을 두었으니 이곳은 낙랑
(敦化說)에서 화룡시 서고성설로 귀결된 의 땅이다. 진나라 의희(405~418) 이후에 그
듯하다. 『요사』 「지리지」 <동경 요양 임금 고련(장수열제)이 처음으로 평양성에 도
부조>에 “요양은 옛날의 (고구려 수도였 읍을 하였다.
던) 평양성이고 (대진국 때) 중경 현덕부”
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중경 현덕부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장수열제가
의 위치는 지금의 길림성 요양시이고 천도했던 평양이 요양시이고 요양은
요양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이 대진국 때 중경 현덕부였고 요나라 때
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연구자들 동경 요양부였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은 이를 부정한다. 『요사』의 이 부분에
대한 교감기(校勘記)에서도 “본절(本節)은 2) 동경 용원부
요양이 평양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환단고기』에 동경 용원부의 위치
라고 하였다. 그러나 위의 조문 앞에서 는 명기(明記)하지 않았고 단지 4대 세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종 광성문 황제가 즉위 후 바로 연호
를 대흥(大興)으로 고치고 동경 용원부
원위(元魏)의 태무제(太武帝)가 사신을 보내 고 에서 상경 용천부로 도읍을 옮겼다는
구려왕이 머무는 평양성에 이르게 했으니 요 기록이 있다. 『신당서』에서 동경 용원
나라의 동경이 본래 이곳이다. 부는 또 책성부(柵城府)로 부른다고 하
였다.
이를 보면 427년 장수열제가 천도 이유립은 장도빈(張道斌)의 『대한역사
한 평양은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요녕 (大韓歷史)』를 인용하여 “동경 용원부는
성의 요양이 확실하다. 요양은 요나 고구려 때의 책성이니 오늘의 연해주
라 때 처음 남경(南京)이라고 부르다가 송왕령(보로실로프) 곧 해삼위(海蔘威)에
938년에 동경(東京)으로 개명했다는 것 서 북쪽으로 250리이다.”라고 하였고
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요양이 평양임 장도빈이 말하기를 “고구려 책성유지
을 증명하는 『원사(元史』 「지리지」의 다 에 발해가 동경을 두었는데, 지금도 연
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해주 니고리쓰크(송왕령)에 고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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