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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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
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
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
고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
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장강일기』,학민사, 1998년, 255쪽
광복 후 인생 행로는 더욱 순탄치 않았다. 오랫동안 임정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구가 곧 암살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중 남편 김의한은 안재홍, 조소앙 등과 함
께 납북되었다. 이번에는 정정화 본인이 부역죄란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경찰서
에서 친일 경찰에게 가혹하게 취조당했다. 가까스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해
방된 조국에서 말도 되지 않은 죄명으로 차디찬 감옥에서 갇혀 친일 경찰에 수모
를 당하며 지낸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출옥 직후에 ‘옥중소감’이라는 한
시를 썼는데 그중 몇 구절을 보면 이렇다.
半生所事爲革命 반생소사위혁명(혁명을 위해 살아온 반평생 길인데)
今日受辱果是報 금일수욕과시보(오늘날 이 굴욕이 과연 그 보답인가)
國土兩斷思想分 국토양단사상분(국토는 두 쪽 나고 사상은 갈렸으니)
玉石交叉各自是 옥석교차각자시(옥과 돌이 서로 섞여 제가 옳다 나서는 구나)
與我無有三生怨 여아무유삼생원(나하고 전 삼생에 무슨 원한이 있단 말인가)
조선의 잔 다르크, 여걸 정정화
부유한 대갓집 셋째 딸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은 그녀는 집도 절도 없는 망
명객이 되어 길 위에서 반생을 보냈다. 간신히 돌아온 조국에서 과부 아닌 과부
로 남편의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갈 줄 누가 알았을까? 스스로 택한 길이기에 원
망하거나 한탄은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 봉양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일생을 조
국 광복을 위해 바쳤던 정정화는 1991년 사망하였고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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