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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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사건
기억, 그리고 추모!
101년 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글. 최원호 편집장
관동대지진과 계엄령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사가미만(相模灣) 서북부에서 M7.9의 관
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직선거리 64㎞ 서남쪽 지점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었다. 일제는 도쿄·카나가와 현의 각 경찰서와 경비대로 하
여금 ‘조선인 폭동’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도록 하고, 도쿄·카나가와현과 사이타마
현, 치바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조선인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다음과 같다. 사망자 9만 9,331명, 부상자 10
만 3,733명, 행방불명 4만 3,746명, 가옥 전파 12만 8,266호, 가옥 반파 12만
6,233호, 소실가옥 44만 7,128호, 유실가옥 868호. 이재민은 약 340만 명이었
다. 현재 일본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을 ‘방재(防災)의 날’로 지정해 재해
대응을 위한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101년 전 관동대지진은 일본
근·현대사에 기록될 엄청난 재앙이었다.
조선인 7천 명 제노사이드
제국주의 일본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101년 전의 사건을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하는가? 이날은 대지진과 그로 인한 화재의 공포보다 백주대낮에 발생한 공공연
한 살인이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 인재(人災)의 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
타야(下谷) 소학교에서 대지진 당시 가장 무섭게 느꼈던 것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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