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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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 임청각
보물 임청각 원경 ©문화재청
임청각은 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이다. 석주
선생을 비롯해 이 집안의 9명의 독립유공자 모두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임
청(臨淸)’이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구절 중 ‘登東皐以舒嘯(등
동고이서소)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
냇가에서 시를 짓노라.’ 라는 싯구에서 따왔다.
일제는 이상룡 선생에 대한 보복으로 임청각 마당을 관통하는 철도를 놓았다.
이 때문에 99칸의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반토막이 나 현재는 약 50여 칸만 남
아있다.
3대에 거쳐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 명가(家)
선생은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
다. 선생의 유고(遺稿, 생전에 출간하지 못한 원고)를 안고 귀국한 아들 이준형은 10여
년간 일제의 끈질긴 고문·협박과 함께 변절의 요구를 받았다. 1942년 석주 선생
의 문집인 ‘석주유고(石洲遺稿)’ 정리를 마치자,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치욕을 더 보탤 뿐”이라는 유서를 아들 병화(석주 선생에게는 손자)에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석주 선생의 가문은 3대 동안 동생 상동·봉희, 아들 준형, 조카 형국·운형·광
민, 손자 병화, 당숙 이승화까지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여기에 석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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