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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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8
다오” 당부했다. 솔빈강은 바로 이상설 유허비가 서 있는 우수리스크를 따라 흐
르는 강으로, 중국어로는 ‘스위푼(秋風) 강’,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슬픈 강’이라고
부른단다. 바람이 세찬 유허비 주변에는 이상설 선생 출생지인 충북 진천에서 옮
겨온 소나무가 그의 외로운 영혼을 감싸주고 있다.
우수리스크 답사길에 가이드가 ‘여기가 발해 성터’라 하였다. 그 말을 듣자마
자 나는 달리는 버스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민족의 옛 영
토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버스에서 뛰어내려 대진국 땅을 밟았다. 발
아래 흙도 만져보았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의 진국장군 대중상(大仲象)이
후고구려를 세우고, 이어서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대진(大震)이라 하였다. 대진은 ‘동방 광명의 큰 나라, 위대한 동방의 나라’를 의미
한다. 고구려의 옛땅을 차지하고 9천 리 연해주 일대까지 영토를 개척하여 나라
가 융성해지자, 당과 왜, 신라, 거란이 모두 조공을 바쳤고, 천하가 해동성국(海東
盛國)이라 칭송하였다. 일명 발해라는 이름은, 당나라가 대진을 깎아내리려 ‘발해
(渤海)’라는 바다 이름을 따 붙인 것이다. 대진은 동북아의 주인이었던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 ‘천통(天統)’과
황제 칭호를 사용하였다. 건국 259년을 누린 강성했던 대진국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끝 간데없는 초원과 구릉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열하일기』에서 광활한
요동 벌판을 처음 본 연암 박지원이 ‘참으로 그럴듯한 울음 터로다.’ 탄성을 질렀
듯이, 천자국의 위상을 떨친 당당했던 대진국의 광활한 대지를 보는 순간, 벅차
오르는 감동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횡단 열차를 타고 평원을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드넓은 대지, 며칠을 돌아다닌 그 큰 땅덩어리가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우리는 못난 후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시간 30분
만에 하바롭스크 역에 내려 역사박물관에서 한민족의 손때묻은 유물을 관람하
고, 고려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 고추장을 직접 담는다는
식당 주인은 독립군 후손이었다. 나라를 찾으려고 목숨과 재산을 모두 바친 우
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나 생각하게 된다. 7
박 8일 짧은 답사였지만 독립군이 나라를 찾으려고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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