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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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국호보다는 ‘단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인식은 당시

                ‘조선학’을 꿈꾸는 많은 학자에게서 공통적으로 통용되고 있던 흐름을 반영하
                고 있다. 고종은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면서 그 정통성을 단군에서 찾고 있다.



                근대 이후의 단군조선 인식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상실한 후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전쟁의 중
                심에 단군이 있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 정부 수립에도 정통성을 단
                군조선에서 찾았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집요한 역사왜곡과 광복 이후 이를 바

                로잡지 못한 한국 학계의 잘못으로 현재 국통맥과 민족사의 근간인 단군조선
                의 위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 운명을 좌우할 심각

                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군조선의 실체, 연대와 영역
                  역사는 대외적으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역사의 실체성, 즉 연대와 영

                역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가 설정되어야 한다. 또 현대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중시되기 때문에 고고학적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단군조선의 건국 연대에 관하여는 많은 견해가 있는데, 대체로 문헌에 근거

                한 것과 고고학적 자료에 근거로 설정한 것이 있다. 현전하는 단군조선 건국에
                대한 가장 이른 문헌은 『삼국유사』이다. 이에 따르면, 건국 연도는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기라는 절대 연도가 제시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지금으로부
                터 4,600여 년이라는 설과 4,300여 년 전이라는 두 견해가 기록되어 있다. 『동

                국통감』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으로 한국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제시
                되고 있는 단군조선 건국 연대는 『동국통감』에 근거하여 서기전 2333년을 현재 ‘단

                기’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학계는 중국 문헌에 근거하여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후로 보는
                견해와 문헌을 무시하고 고고학적으로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는 시

                기를 근거로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 문헌
                과 고고학에 근거한 연대 주장에는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보인다.

                  우리의 기록을 살펴보면 단군조선이 무너진 연대가 확실하게 남아 있지 않
                다. 일반적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한 서기전 107년을 고조선 멸망으로 추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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