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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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에 문외해서 나온 완전한 오역인 것이다.

                  가락국이 ‘남가야’는 맞지만, ‘남가라’는 아니다. 가야는 낙동강 수계를 따라
                서 북쪽으로 상주 함창에 고녕가야(古寧伽倻)가, 남쪽에선 남가야인 가락국 등 6

                개의 국가로 이루어졌다. 남가야인 가락국은 532년에 멸망하였지만, 『일본서기』
                속의 남가라는 계속 존속하고 있다. 즉 다른 정치체란 말이다. 또한 이 논문의 저

                자는 「가야 각 국사 연구(加耶 各國史 硏究), 2003」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임나(任那)의 임(任)은 오행(五行)에서 남방을 의미, 나(那)는 땅을 나타

                    내서 임나는 남쪽 땅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행(五行)에 임(任)은 없다. 오행에는 임(壬)이 있으며, 방위는 북방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또한 오행에 대한 문외한의 주장일 뿐이다. 중국의 사료 ‘임

                (任)을 남방’으로 번역, 주장한 것은 논자의 완벽한 오역이다.
                  그렇기에 「광개토태왕비문」의 ‘임나가라’가 『일본서기』 ‘남가라’라는 것은 사

                료에 맞지 않는 설정이며, 고구려인들의 인식으로 기술한 것은 논자의 사료 원문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역이다. 사실은 임나일본부격인 ‘임나가라’를 ‘가야’로 설
                정하기 위해 비약 과장된 설정인 것이다.



                고령 대가야를 임나로 설정한 조선총독부

                  『부산시사』에는 상기 비판 내용을 알았는지 임나가라를 김해 가락국으로 설

                정하는 최근 주장을 뒤로하고, 조선총독부 이마니시 류가 주장하고 이병도가 계
                승한 고령 대가야를 ‘임나가라’로 다시 기술하였다. 조선총독부가 고령에 임나의

                비석을 세웠고, 광복 후 철거한 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고령 대가야를 임나가라로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이 부분의 필자를 부산시민들 앞에 세워 그의 의도를 물어야 할 실정이다.
                  가야는 임나가 아니기에 광개토태왕이 공격한 임나가라는 가야가 아니다. 광

                개토태왕 시기 고구려와 가야가 적대적 관계였다든가 광개토태왕이 가야를 공
                격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부산시사』에서 설정한 논리 그대로 고구려가 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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