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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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5월 16일에 명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사
막에 이르러, 응창부(應昌府)에서 원 임금의 손자인 매적리팔라(買的里八刺,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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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르바라)와 그 후비(后妃)를 사로잡았다’ 는 내용이 있다.
사료에서 응창부는 몽골 사막에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데 『고려사』와 같은 내용으로 『태조고황제실록』에 응창부를 점령하고 돌
아오면서 흥주를 지난다는 기록이 있다. 『테조고황제실록』에 “군사를 이
끌고 북쪽으로 응창(應昌)에 이르러 그 성을 함락하고 (중략) 군대가 돌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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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흥주(興州)를 지나니”라는 내용이다. 위 두 사료를 통해 흥주는 몽골
사막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지점에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한 위
치를 『요사』에서는 보다 정확히 알려준다.
흥주(興州) 중흥군(中興軍). 절도사(節度使)를 두었다. 본래 한(漢)의 해
명현(海冥縣) 땅이다. 발해가 주(州)를 설치하고, 옛 현(縣)인 성길현
(盛吉縣)·산산현(蒜山縣)·철산현(鐵山縣) 3개는 모두 폐지하였다. 집 수
는 200이다. 상경(上京) 서남쪽 300리에 있다. 10)
그림6> 요하 수계에 있는 6주와 가장 위쪽에 있는 흥주, 광종이 개척한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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