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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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4. 용주(龍州)
용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도표에서 1번의 자료는 용주가 거란의 상경 남쪽과 거리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표 3> 사서에 나오는 용주에 관한 자료
출 처 번 역 문 원 문 비 고
上京臨潢府.(중략)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중
保和縣.本渤海國富
략) 보화현(保和縣). 본래 발 용주가 거란의
利縣民,太祖破龍
해 부리현(富利縣) 사람들이 상경 남쪽과 거
1. 『요사』 권37 다. 태조가 용주(龍州)를 격 州,盡徒富利縣大 리가 멀지 않다
지 제7 지리지1 散居京南.統和八
파하고 부리현 사람들을 전 는 것을 알려준
年,以諸宮提轄司大
부 옮겨서 상경 남쪽에 흩어 다.
戶置.隸彰湣宮.戶
져 살게 하였다.
四千.
서경도령 정응경과 전 정
遣西京都領鄭應卿, 용주에서 몽고
주부사 박득분을 파견하
2. 『고려사』 권23 여 배[押船] 30척과 선원[水手] 前靜州副使朴得芬, 까지 배로 갈
세가 권제23 押船三十艘,水手 수 있다.
고종 19년 3,000인을 데리고 용주포(龍 三千人,發龍州浦,
州浦)에서 출발하여 몽고까
赴蒙古,從其請也.
지 가게 하였다.
하칙보(河則寶)를 요(遼)에 보
용주에서부터
3. 『고려사절요』 내었다. 용주(龍州)에서부터 배 遣河則寶如遼. 自龍 배를 타고 요에
권9 인종 를 타고 건넜으나[泛海] 도달하 州泛海, 不達而還.
간다.
지 못하고 돌아왔다.
2번의 『고려사』 자료를 보면 배[押船] 30척과 선원[水手] 3,000인을 데리
고 용주포(龍州浦)에서 출발하여 몽골로 갔다고 하였다. 현재 북한의 용천
을 용주로 역사학계에서는 알고 있는데, 용천에는 용주포(龍州浦)라는 곳이
없고 용천에서 배를 타고 몽골까지 가지 못한다. 용주가 요하 근처 지역에
있기에, 용주에서 요하 수계를 거슬러 몽골지역까지 가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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