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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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고대의 대표적인 동이족의 묘제로 화하족의 토광묘와는 다르다. 특히 주목할 곳은
우하량 제2지점의 방형(方形) 적석총이다. ‘중심에 큰 적석총’과 그것을 에워싼 ‘27기
의 석관묘’는 홍산인들이 국가 단계의 문명을 누렸음을 시사한다.
우하량 제2지점에서 발굴된 원형(圓形) 제단은 홍산인들의 정신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5,500년 전에 세운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原型)으
로 제천문화의 뿌리이다.
또한 우하량 제1지점에서 발굴된 신전[廟]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여신이었다. 반지
하식 구조로 지은 여신묘 터에서는 여신상과 함께 주실(主室)에서는 곰 소조상, 그리
고 북실(北室)에서는 새 소조상이 출토되었다.
홍산문화 발굴 초기에는 중국에서 자신들의 문헌으로 해석할 수 없어서 ‘신비의
왕국’으로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삼국유사』<고조선조>와 『삼성기』 상, 하의 문헌
기록을 통해 환웅천왕의 배달국 시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산문화는 신석기 말
기의 문화로 ‘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500~BCE 3000년경의 문화’로
약 1,5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유적은 환웅께서 배달국을 건국
한 이후 웅족과 호족이 환웅천왕을 찾아와 환족(桓族)으로 교화되기를 원한 사건과
부합하는 것이다. 바로 홍산문화는 환웅천왕의 배달국 문화로 추정할 수 있다.
7. 환웅천왕과 오한기 남신상
2012년 5월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오한기 지역의 집터에서 흙으로 구워 만
든 ‘남신상’이 발견됐다.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상이 발굴된 적은 있지만
남신상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었다. <인민일보>와 CCTV 등 대표적인 중국 언론들
은 “5,300년 전의 중화조신(中華祖神)을 찾았다”는 내용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최초로 집터에서 남신상의 얼굴 파편을 발견한 오한기박물관의 관원인 왕제와 박
물관장 전언국을 비롯한 발굴팀은 열흘 동안 65개의 도기 조각을 발견했다. 흥미롭
게도 도기 조각을 복원한 결과 55㎝ 크기의 남자 인물상이었다. 전체적인 인물상의
모습은 반가부좌 수행자세로 두 손은 공수의 모습으로 하단전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특히 백회가 뚫려 있고 입을 둥글게 벌리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과연 중국인들의 조상신인가? 중국에서는 남신상의 유물을 초상화로도 복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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