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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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촌이 있었다. 1910년대 서간도에서 설립된 자치기관 경학사와 부민단은 3·1 운
동 이후 한족회(韓族會)로 개편되었다. 한족회가 발간했던 『한족신보』는 1920년 1월
15일 중국관헌의 탄압으로 신문사는 강제 폐쇄되었다. 이후 한족회는 신문이름을
『새배달』로 고쳐 발행했다. 신문 발행 장소는 삼원보 배달촌이었다.
배달촌 위치. 출처 - 동아일보 2019년 1월 24일자
오운현 배달촌
오운현 배달촌은 2019년에야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혈성단장 김국초는 1920년 11월 28일 소재지를 ‘오운현 배달툰(倍達屯)’이라 명
기했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 마을의 오늘날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배달촌은 1921년 1월 마적 떼의 습격을 받은 뒤 오운(烏雲)현으로 옮겨
다시 건설됐다. ‘배달촌’이라고 명명된 건 이즈음… (동아일보 2019.01.24.).
북만주 오운현의 배달촌은 시기에 따라 이동하면서 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의 형성 배경에 독립운동이 바탕으로 깔려 있던 만큼, 전 시기를 통틀어 독립운동의
흐름에 동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민영, 「북만주 오운현烏雲縣의 독립운동 근거지 배달촌 연구」, 2020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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