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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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둘러보면서 이완영 교육이사가 가 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경주는 역시 경
야 역사의 왜곡을 설명하자 이런 이야기를 주였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 금관의 나라이
조금은 알고 있었으나 처음 현장에서 접했 며 최치원 선생이 말했던 풍류의 도가 펼쳐지
던 해외동포 언론인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 고 불국사,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불교의 찬
는 모습이었다. 김수로 왕릉, 수로 왕비릉이 란한 문화를 직접 볼 수 있어 말할 수 없는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수로왕을 인 감탄과 감동을 이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정하지 않고 허황후를 인정하지 않고 가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학의 창도가 이루어
의 건국 역사를 부정하고 3세기, 4세기나 되 진 곳이 바로 경주였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어야 가야가 성립되었다고 하는 역사학계의 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인 그 탄강지와 경
주장은 너무 어이가 없어 현장에서 한숨과 주 용담의 용담정을 방문했다. 여기에서 최
탄식만 나오게 하였다. 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게 된 결정적 계
경주에서도 역시 신라 천년사를 주장하는 기가 된 신비한 사건, 1860년 음력 4월 5일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17대 내물왕 이전 400 의 천상문답사건 이야기를 듣고 동학의 시
년을 가르치지 않고 신라의 건국조인 박혁거 천주 사상과 다시개벽을 다시 한 번 각인하
세를 신화로 보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비 는 계기가 되었다.
김해 가락국 탐방
첫날 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에 흡수된 가야
김수로왕릉 → 대성동 고분박물관, 대성동고분군 의 역사를 상세히 기술해 놓고 있지는 않지
→ 국립 김해박물관 → 구지봉 → 김수로왕비(허 만, 신라와 가야와의 교전에 대한 기록과 멸
황옥)릉, 파사의 석탑 →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망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첨성대 가락의 동쪽 강이기에 낙동강이라 부르
며, 강의 수계(水系)를 중심으로 상류지역인
일행은 서울에서 출발해 김해시로 향했다. 상주·함창지역에 고녕가야가 자리하였으며,
한국인 1천만 명 이상이 김씨이고 그 중 2/3 강줄기를 따라 내려오며 성산지역에는 벽진
인 김해 김씨의 직계 조상 김수로왕의 나라, 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가락국 금관가야,
가락국 김해는 서기 42년에 건국된 6가야 고성 쪽으로 소가야가 건국되었다. 가야의
의 중심국인 금관가야의 도읍지다. 『삼국사 고분은 산 능선을 그대로 활용하여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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