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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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사는 상해임시정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립운동에 헌신하
기로 하고 상해로 갔다. 그러나 일본에 오래 있으면서 몸에 밴 습관과 능
숙한 일본어로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오해를 받는다. 이 의사를 품어 준
사람은 김구였다. 김구는 당시 임시정부에서 추진한 한인애국단 단장이
었다. 이 의사가 단순한 건달이 아님을 간파한 김구는 이 의사의 독립의
지에 감명을 받는다.
거사 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상해에 있을 때도 일본인 양복점에
서 일하며 일본의 총영사관도 드나들며 철저하게 일본인처럼 행동했다.
거사를 치르러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탈 때 영사관의 경찰이 마중 나올 정
도였다.
그 밤을 같이 자고, 이튿날 아침에 나는 내 헌옷 주머니 속에 돈뭉
치를 내어 이봉창 선생에게 주며 일본 갈 준비를 다하여 놓고 다시
오라 하고 서로 작별하였다. 이틀 후에 그가 찾아왔기로 중흥여사에
서 마지막 한 밤을 둘이 함께 잤다. 그때에 이씨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일전에 선생님이 내게 돈뭉치를 주실 때에 나는 눈물이 났습니
다. 나를 어떤 놈을 믿으시고 이렇게 큰 돈을 내게 주시나 하고,
내가 이 돈을 떼어 먹기로, 법조계 밖에는 한 걸음도 못 나오시는
선생님이 나를 어찌할 수 있습니까. 나는 평생에 이처럼 신임을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요, 또 마지막입니다. 참으
로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영웅의 도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백범일지』 중
이 의사는 몸에 수류탄 2개를 지니고 1931년 12월 17일 일본으로 건
너가 이듬해 1월 8일 일왕이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고 거행 날짜로 잡았다.
선생은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일본 궁성 사쿠라다문에서 수류탄을 던
졌다. 한 발은 터져서 말이 다치고 궁내대신 마차가 뒤집어졌다. 일왕 히
로히토도 정신을 잃고 땅에 덜어졌으나 다치지 않았고, 수류탄 두 발 중
한 발은 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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