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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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왕을 죽이는 일을 결코 이봉창 한 사람이 멋대로 벌이는
난폭이 아니라 조선 민족이 전반적으로 독립을 희망하고 있기 때
문에 그 민족을 대표하여 첫 번째 희생자로서의 결행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 이봉창 제7회 신문조서 중에서, 1932.2.13
이 의사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0세 전후에는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나
라가 쇠망하면서 집안도 기울어졌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약방에서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배웠고, 1919년에 용산역의 임시인부로 취
직했다.
이 의사는 일본인들이 조선인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능숙한 일본
어를 구사했다. 그러다 이 의사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
을 자각하는 계기가 있었다. 일본에 있었을 때, 순
수하게 일왕 즉위식을 구경하러 간 것인데 한
글로 된 편지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9일간
유치장에 구금당한 것이었다. 편지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지만, 조선인이라
는 이유로 차별대우 받은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
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누군가가 이끌어 주는 사
람이 있으면 들어갈 기분이었다. 자
신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
선의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의 자주권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 이봉창이 형무소에서 쓴 자술서 중
상해임정 산하 한인애국단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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