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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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의 『천부경』 이해 김철수, 전재우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세우신[三神立敎]’ 이래 곳곳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로부터 소도가 건립되어 도처에서 볼 수 있었고, 산상山像과 웅상雄常이 산꼭대기마다 있게
되었다(自是로 蘇塗之立이 到處可見이오 山像과 雄常이 山頂皆有하며).
4)
이러한 소도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은 『태백일사』의 다섯 번째 편 제
5)
목이다. 「소도경전본훈」에는 한민족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천부경』,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신지비사神誌秘詞』, 『참전계경參佺戒經』 등의 기원과 그 내용을 자세히 전
하고 있다. ‘소도의 경전’인 『천부경』은 제천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태백일사』 「삼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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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본기」에 따르면, 천제(환웅천황)가 산에 행차하시는 의장에는 풍백이 『천부경』을 새긴 거울을
진상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을 새긴 거울을 진상하고, 우사는 삼신맞이 북소리(迎鼓)에 맞추어 환무를 추고, 운사
는 백 명의 무사로 호위했다”라고 하였다. 천제(환웅천황)가 산에 행차하시는 의장이 이처럼 성
대하고 엄숙하였다(世傳桓雄天王이 巡駐於此하사 佃獵以祭하실새 風伯은 天符刻鏡而進하고
雨師는 迎鼓環舞하며 雲師는 佰劒陛衛하니라. 盖天帝就山之儀仗이 若是之盛嚴也라).
7)
이러한 『천부경』은 ‘제왕학’이며 ‘통치학’이었다. 이 소도제천과 더불어 역대 왕조에서는 『천부
경』을 풀어주고, 『삼일신고』를 강론하며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환웅천황께서 처음으로 동방 배달의 새 역사 시대를 열고(開天) 백성에게 교화를 펴실 때, 『천부
경』을 풀어 설명하고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뭇 백성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桓雄天王이
肇自開天으로 生民施化하실새 演天經하시고 講神誥하사 大訓于衆하시니라).(『삼성기전三聖
紀全』 「하편下篇」) 8)
를 좋아한다. 그처럼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國邑各立一人主祭
天神, 名之天君.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好作賊. 其立蘇塗之義,
有似浮屠, 而所行善惡有異.”(『三國志』 「魏誌 東夷傳」).” 제사장으로서의 천군은 통치자와는 별도로 농경 의식과 종교
의례를 주관하였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천군은 왕으로 바뀌었고 별읍이었던 소도는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4)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324~325쪽.
5) 이유립은 『배달민족사대강倍達民族史大綱』에서 “〔소도蘇塗의 경전본훈經典本訓〕”으로 풀이한 바 있다. 李裕岦,
『대배달민족사』 2권(서울: 고려가, 1987), 58쪽.
6)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99쪽.
7)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28~429쪽. 이유립은 『환단고기정해桓檀古記正解』에서 ‘천제취산지의장天帝就山之儀
仗’에 대해 “등극식이 산의 정상에서 행하기에 취산就山이라하니 제천의식이 역시 같다(登極式이 行於山頂故로 曰就山
이니 祭天之式이 亦同이라).”라고 주석을 달았다. 李裕岦, 『대배달민족사』 1권,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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