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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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고조선 조(條)에 있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의 의미에 대한 심층적 연구 김윤명
약 1만여 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을 넘나들며 들판에 열린 각종 식물의 열매를 따먹으
며 점차 그 속성을 알아내 비로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초기 한자는 바로 이 무렵 태동했다. 문자
가 문명과 미개의 구분을 넘어 신화에서 역사시대로의 진입을 알리는 척도이고 보면 이때가 인간
이 문명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뒤이어 원시시대가 지나가고 고대사회를 통일한 제왕의 시대에 이른다. 약 5천여 년 전, 이 시기
는 문명의 서광을 비추며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신화의 배경이 되었다. 신화의 형성에
는 당시 사람들의 특수한 심리가 중요한 동기가 된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꿈을 꾸었는데 꿈속
의 형상을 영혼의 작용으로 생각하였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확신하며 장례를 중
히 여겼고, 시신의 주위나 관속에 붉은 가루를 뿌려 다시 살아 날것이라는 회귀를 꿈꾸었다. 또한
사람에게 영혼이 있을 뿐 아니라 온 세상 만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어 영혼 불멸의 관념이 싹텄다.
이 같은 인간의 상상력은 신화탄생에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원시 사람들은 대자연 앞에서 무력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인간을
압박하는 자연의 위력을 각종 신령들의 농간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이에 점차 신(神)의
관념이 싹텄고 마침내 신(神)을 추앙하게 되었다. 신이 있으므로 신의 활동이 있고 다양한 신들의
활동이 이야기로 모아져 마침내 신화(神話)가 탄생되었다.
신화와 전설은 종종 혼돈되고 한계가 모호하여 보통 신화전설이라 한다. 인간의 생활능력이 향
상되면서 각 시기마다 걸출한 인물에 의해 기발한 발명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이러한 성취를 역
사적인 인물에 부여시켜 높이 추앙하였다. 부락간의 투쟁이 빈번하여 종족의 존망과 승패가 거듭
하면서 자기 부족을 승리로 이끈 인물을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원시 신화 중의 신은
부락의 영웅업적과 혼합되어 신화와 영웅이 서로 결합되기도 하였다.
고대인들은 자신들 역사의 굴레 속에 얽힌 상상의 세계를 신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펼쳤다. 이같
이 역사의 전설화와 신화의 역사화가 동시에 출현하게 되면서 전설은 신화와 혼합되고 또 분화되
었다. 신화가 인격화된 신의 이야기라면 전설은 신격화된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다. 61)
삼국유사 고조선조(條)의 환웅(단군) 신화는 우리 조상들이 동굴에서 살던 구석기 후기부터 BC
11세기의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까지의 긴 이야기를 고려시대 일연이 아주 짧게 쓴 이야기이다.
이것을 신화라고 하여 고조선(古朝鮮)의 실존(實存)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건국신화가 존재하는
고조선(古朝鮮)과 관련된 더 많은 자료와 유물을 찾아 역사적 계통을 체계화하여야 할 것이다.
삼위태백과 관련되어 묘향산의 지리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62)
묘향산은 조선계지층으로서 석회암이 두껍게 퇴적되어 있어서 곳곳에 Karst 지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지형 특성에 따라 묘향산에는 단군굴, 용문대굴, 동룡굴, 금강굴 등의 많은 동굴이
61) 양동숙, 『한자 속의 중국 신화와 역사 이야기』(서울: 주류성출판사, 2017), 28~31쪽.
62) 인터넷 〉 이미지 〉 묘향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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