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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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우리 정신의 철학적 복원 이승종
제III장에서 논자는 우리의 시원적 사유를 찾아 나서는데, 유불도(儒佛道)의 삼교가 전래되기 이
전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사화에서 “선(仙)으로 표현되는 샤머니즘”을 지목하고 있다. 이
런 시원문화는 경전보다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한국 고대의 축제문화와 고분벽
화에도(“고분벽화는 샤머니즘 예술의 극치”: 9쪽)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IV장~VII장에서 논자는 “대지에 터한 흑신 웅녀가 은폐된 어두운 동굴속에서 인고의 성
숙”(14쪽)의 과정을 거친 것과 “법과 질서의 세계인 신시(神市)의 백신 환웅과 합일하게 되는 단군
사화”(14쪽)의 경우를 세계신화와 종교의 차원에서 재조명한다. 웅녀의 토착 샤머니즘과 환웅의
외래문명의 융합을 골란(Ariel Golan)이 제시한 “파토스적 흑신과 로고스적 백신의 종교론”(13
쪽)에 견주어 논의하고, 나아가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적 꿈과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이중주”(13
쪽) 및 “대지의 은닉과 세계의 환한 밝힘 사이의 대립”(13쪽)에서 예술작품을 읽고 또 은폐와 비은
폐(aletheia)의 진리사건을 읽은(16쪽) 하이데거의 철학을 중심으로 논의하는데, 이때껏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논의로 보이지만, 매우 창의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논자는 우
리의 시원사유가 중국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하나씩 밝혀낸다(14쪽 이하): 타자와 융합하는 통합
적 세계관(백신과 흑신, 호랑이와 곰의 공존), 영적인 세계관, 삶을 긍정하는 문화, 에너지 넘치는
신명문화 등등.
이때껏 평자는 평하고 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참신하고 창의적인 논문에서 배운 게 훨씬 많다
고 여긴다. 이제 독자의 편에서 좀 더 명쾌한 이해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 논자는 최치원의 시원정신을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보고, 이것은 “단군사화의 홍익인간보
다 앞선 우리 정신”으로 보는데, “뭇 생명을 살림을 의미하는 군생을 목적으로 하고 뭇 생명과 하나
됨을 의미하는 접화를 수단으로”(1쪽) 한다면, 이 접화군생은 단군사화의 내용과 대비되어야 할
사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군사회에도 접화군생의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단
군은 권력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추대에 의해 왕(단군왕검)이 되었으며, 그가 세계수
혹은 “우주나무”인 신단수(神壇樹) 아래에서 결혼식을 거행할 때 동식물의 축하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뭇 생명들과 어울리는 한마당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환웅은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늘 아래 펼쳐진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고 여기서 뜻을
펼쳐보고자 하여 무리들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왔다. 신단수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신시(神市)를 만들고 이상적인 국가를 이룩하였다. 동물들조차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워
날마다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한다. 신단수 아래에서 펼쳐진 혼례식엔 신과
인간 및 동물과 산천초목이 하나 되는 훌륭한 결혼식이었다고 보인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 동물
과 식물이 우주의 한 가족이 되어 모두 한 마음으로 축복하고 기뻐했다면 단군사화에서 접화군생
을 읽을 수 없는지 논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2. 논자가 사용하는 “샤머니즘”은 좀 더 개념규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종교학자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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