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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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조선은 “자발적으로 명나라의 아바타”로 전락하였기에,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청나라를 ―지나
에서 하던대로― 야만족으로 여기며 스스로 소중화로 자만하다가 병자호란을 당하고 말았다. 그
런데 한국의 역사학계는 이런 철부지 망나니짓으로 인한 극도의 수치에 대하여 별다른 반성도 하
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평자는 논자의 “단군과 고조선으로 상징되는 이(夷)의 상고사는 조선인 자
신에 의해 지워지고 잊혀졌다. (…)유교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이(夷)의 상고사를 되찾을 수도 없다”(3쪽)는 논지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학계와 한국철학계는 여전히 유학에 치중하는 편이며, 사마천의 『사기』와
중화사대주의로 일관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무슨 역사학의 정본인 것처럼 중심축에 세우고,
다른 역사서는 실증사관에 맞지 않다는 핑계로 배척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 동이계의 홍산문명
내지는 요하문명이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단군사화
(檀君史話)는 신화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빙자하여 역사학에로 끌어들이기를 꺼리고, 논자가 지적
하듯 우리의 “강단학계에서는 선가(仙家)의 문헌들을 모두 판타지로 간주하고”(4쪽) 있는 실정이
다.
그런데 논자가 지적하듯 “중국의 『사기』, 한국의 『삼국사기』, 일본의 『일본서기』를 근간으로 구
축된 한·중·일 세 나라의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나라 모두 한국의 선가 사서를 인정
할 수 없다.”는 진단에 매우 안타깝게 여겨진다. 고대문명을 가진 나라들은 대체로 그들의 역사를
신화적 방식으로 서술하였는데,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와 고대 이집트,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와 일본도 신화적으로 전승된 것을 기꺼이 역사학의 지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역사학계는 고조선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단군사화를 역사와 연계한다
면, 당장 “재야 사학”으로 내몰고 만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단군사화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논
자가 지적한 철학소들(哲學素; philosophemes)로서의 “홍익인간”과 “재세이화(在世理化)”― 소
위 실증사학을 빙자한 결백증환자 증세를 드러내며 거두절미하고 있다. 다음은 신진학자의 우리
역사학계에 대한 불만과 자괴감 섞인 탄식이다: “주변국인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본은 역사 교과
서 왜곡을 통해 자국의 입맛에 맞게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으려 하는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유산
과 역사마저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종호, 『한국7대 불가사의』, 역사의 아침
2007, 8쪽).
제II장에서 논자는 여러 선가(仙家)의 문헌들을 언급하는데, 이들 문헌들이 대체로 유교적 방식
으로 쓰여졌다는 것과 아울러 “유교적 관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 나아가 “우리 철학과 종교의
원류인 샤머니즘의 신명 넘치는 자유정신은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4쪽)고 지적한다. 물
론 저런 유교적 편향성이 다분하다거나 샤머니즘의 신명 넘치는 자유정신이 결여되었다고 하더라
도 철학소들은 다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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