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5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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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에 대한 연구  전준호










































                            그림 21 청나라 시기 『발해국지도(渤海國地圖)』의 발해 강역지도 (네이버 제공)


                 Ⅵ. 결론




                   여러 문헌사료와 고지도들의 내용들을 검토해 본 결과 발해의 강역과 주요 지명들의 위치는 사

                 학계의 통설(通說)과는 모두 달랐으며 서쪽은 거란과 접하였는데 그 경계는 난하(灤河) 이고 동쪽,
                 남쪽의 경계는 신라와 접하였고 그 경계는 요하(遼河)였다. 발해가 『신당서(新唐書)』의 부여, 옥저,
                 변한, 조선의 땅을 모두 차지했다는 기록들을 볼 때 발해의 강역은 상당히 넓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신당서(新唐書)』의 사방 5천리의 발해 강역의 기록으로 볼 때 하북성 일부와 요령성, 길림

                 성, 흑룡강성 지역을 모두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발해의 강역은 청나라 시기까지도 상당히
                 넓은 강역을 차지한 대제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발해와 관련된 주요 지명들은 후대에 동쪽
                 으로 이동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현재 왜곡된 발해의 강역은 고구려의 위치를 잘못 비정하여 발생

                 한 것으로 그 북쪽에 위치한 말갈의 위치까지도 모두 왜곡되어 강역이 잘못 비정된 것이 원인이다.

                 이런 위치 비정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아직까지도 이런 사료와 전혀 맞지 않는 잘못
                 된 위치에 비정하여 학계의 통설로 따르고 있다. 이런 잘못된 발해의 강역을 바로 잡고 올바른 발해
                 사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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