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6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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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는 곳이 대략 고구려의 요람 지역이라고 보았다. 104)
에듀아르 샤반느는 유럽인으로는 처음 고구려 유적을 탐사하고 「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 유적
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105) 샤반느는 통구지역을 답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홀
본 서쪽에 왕이 성을 쌓은 성산상(城山上)은 홀본 서쪽에 있는 산 위의 옛 성(山城子)이 틀림없다.
홀본은 통구와 같은 것이다. 홀본 동쪽의 언덕은 오늘날에도 동강(東岡)이라고 부르는 마을로, (광
개토경평안호태왕)비석이 서 있는 곳이다. 106)
즉 두 프랑스 학자는 졸본을 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가 발견된 통구로 보았다.
일본인 학자인 白鳥庫吉은 졸본을 본계시 환인현에서 찾았다. 107) 그 근거로 언어학적인 고증을
함과 더불어 108) 한사군이 한반도와 그 인근에 있었다는 추정에 의한 것이었는데 임찬경의 논문을
인용해 살펴보면,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의 졸본 비정에 영향을 미친 지리인식은 진번국이다. 시라토리
는 부여에서 남하하여 요동의 바깥변방인 동가강 즉 현재의 혼강 일대에 머물면서 약탈과 내속
(內屬)을 반복하던 집단이 소국 형태로 된 것을 진번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진번은 그 명칭
이 졸본에서 온 것으로서, 그 지역을 졸본으로 추정한 것이다. 고구려는 졸본의 지역 즉 비류수
가에서 건국하는데, 이곳이 홀본이고 졸본이라는 것이며, 오녀산성에 도읍을 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흘승골성이라는 것이다. 시라토리의 이러한 관점은 한사군은 물론 창해군도 한반도와 그
인근에 비정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 특히 창해군을 압록강 중류에서 혼강 유역에 위치시키고,
창해군이 해체된 뒤에 진번을 그 지역에 위치시키면서 “진번과 고구려를 연결”시키는 간단한
사서 기록에 근거하여, 고구려 첫 도읍을 진번의 지역인 환인현 일대에 비정하였던 것이다. 그러
므로 시라토리의 고구려 첫 도읍 비정도 현재의 압록강과 그 이북의 혼강 유역에 한사군 중의 진
번국(군)을 위치시키고 그것을 고구려와 연관시키는 추정(推定) 속에서 그런 도읍 비정이 가능
했다고 볼 수 있다. 109) ”
이병도 역시 언어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호태왕비에는 비류곡 홀본 서성산이라 하고, 졸본
의 주에는 『위서』를 이끌어 ‘지홀승골성’(승홀골의 전도인 듯)이라 하였으니, 졸본은 바로 졸홀(솔
골)ㆍ승흘골(솔골)의 이칭으로 볼 것이며, 고구려 최초의 수도인 만큼 저명한 곳이다. 지금 환인에
비정한다. 그러면 졸본천은 환인을 흐르는 혼강(고명 마자수)을 별칭한 것으로 본다.”라고 하였
104) 서길수(2007), 252~253쪽.
105) 서길수(2007), 50쪽.
106) 서길수(2007), 155쪽.
107) 白鳥庫吉, 「丸都城及國內城考」 『朝鮮史硏究』 岩波書店, 1940
108) 복기대, 「고구려 도읍지 천도에 대한 재검토」, 『단군학연구』 22, 2010, 6쪽
109) 임찬경,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에 관한 검토」, 『선도문화』 20, (2016), 327~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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