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3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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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 위치 인식에 대한 고찰  길이숙



                 한  경우로 이이명(李頤命,  1658~1722,  疎齋集卷之十一  雜著  疆域關防圖說)                     93)  성해응(成海應,

                 1760~1839, 硏經齋全集卷之十五 文○辨 卒本辨)               94) , 이문재(李文載, 1898~1950, 石洞遺稿 石洞
                 先生遺稿卷之六 雜著 謾記[下])          95)  등이 있다.

                   발해 솔빈부 위치는 신라 북계의 위치가 새롭게 연구되는 추세에 맞추어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
                 이다.  96)  또한, 백두산과 장백산은 다른 곳이며, 지금 백두산이라고 불리는 곳이 장백산이고, 백두

                 산은 흑룡강 강변에 있다는 연구가 위상수학에 근거해 이루어지고 있다.                            97)  최규홍은 “조선조의
                 두만강은 현재의 수분하(러시아: 레카라즈돌나야강)이며, 백두산은 흑룡강변과 토문강변에 있

                 다.”, 목단강은 1712년 이전에는 흑룡강이었으며, 1712~1910년경까지는 토문강, 그 이후 목단




                 城。皆宜屬焉。始扶餘別國卒本之王居此。朱蒙娶其女而嗣位焉。... 今興京老城梁貊之國。亦古卒本之界。
                 92) 李種徽. 修山集 修山集卷之十四 東國輿地雜記 東方地名之辨, 東明自扶餘逃難南奔。開國於卒本。而卒本雖未詳地分。
                 漢書所載高勾麗縣。今爲蓋州衛地。則扶餘之地。當在其東北。正當白頭所在之地方矣。... 沃沮有東北南三國。... 而高勾麗東
                 川王二十年。魏毌丘儉伐高勾麗。麗王逆戰於沸流水上。(愚按以此觀之。沸流水。明在鴨河北。不在成川界。)
                 93) 高勾麗始祖高朱蒙。元帝建昭二年甲申。立國於卒本川上。(或云今平安道成川沸流江上流。)  國號高勾麗。亦稱卒本扶餘。
                 高勾麗。始屬玄菟。漸幷荇人盖馬沃沮等國。據樂浪玄菟遼東之地。其疆域大抵東至海。南至漢水。西北跨有遼左北扶餘之地。
                 今以東海南漢西鴨綠北豆滿爲限作圖。江外地不可詳。且非我境。故略之。地勢長。故分作南北二圖。其初起處。卒本川。勝覽。
                 繫之于成川。盖以沸流水松壤國爲證。而亦未可知也。通典云。朱蒙自北扶餘東南。行渡普述水。至紇升骨城居焉。古記云。朱蒙
                 自扶餘逃難。至卒本。金富軾以爲紇升骨卒本。似一處。而漢志所云玄菟郡屬縣高勾麗。是歟。然則卒本似非鴨水以南之地也。
                 94) 卒本。考之諸書云成川。非也。... 按唐書云渤海鄚頡府。扶餘故地。遼志云韓州東平郡。本藳離國。高麗置鄚頡府。韓州在
                 開元界。其旁境渤海率賓府。率賓所領建州。卽興京。亦夫餘舊疆也。率賓。金改恤品路。又改速頻路。又稱蘓濱。自渤海以後其
                 地名雖改。自金源以後其土音雖變。然皆由卒本而訛也。其地之東。今三水甲山地也。其地之西。今烏喇寬田地也。然則太白山
                 南優勃水。卽今白頭山南鴨綠之源。一稱虗川江也。淹淲水。卽鴨綠之舊名也。高麗史宣宗五年。請罷遼東榷場表曰自天皇鶴
                 柱之城。西收彼岸。限日子鼈橋之水。東割我疆者是也。卒本卽蘓濱水也。此不在我境。卽在烏喇境。其南蘓水乎。南蘓水一作
                 蘓子河。自興京界。西北入渾河。又有南蘓城。淸一統志云高句麗所置。此卽朱明所都。
                 95)  高朱蒙生於遼東句麗山下。以其山冠其姓。因爲國號。本姓解。而自稱高辛之後。以高爲姓。都成川。卽卒本扶餘也。朱蒙
                 子琉璃王。移都國內城。卽義州。至長壽王。移都平壤。類說高句麗始居遼東北。後漸東遷于浿水之側。卽平壤大同江也。其地
                 多入于渤海靺鞨。世傳卒本川。指爲成川妄矣云。未詳孰是。至唐高宗戊辰。李勣陷平壤。置安東都護府。
                 96) 인하대 고조선연구팀은 신라의 북쪽 경계가 중국 길림성 용정시 부근이라는 견해를 발표하였다. 신라와 발해의
                 경계인 ‘니하’는 현재 중국 요녕성 개주시의 ‘어니하’이고, 신라의 정천군은 길림성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의 용정시임을
                 밝혔다. 용정시의 용두레우물에는 지금도 ‘용정의 기원은 정천이다’는 연혁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또한 정천군에서
                 300여㎞ 떨어진 흑룡강성 영안시의 발해왕궁터가 사실은 발해 동경용원부임을 새롭게 밝혔다. 이곳은 원래부터 동경
                 성으로 불려왔다. 일본학자들은 이곳을 금나라의 동경이라고 믿었다. 일 학자들은 문헌에서 사료를 찾지 못하자 1939
                 년에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금나라 관련 유물, 유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안시의 발해왕성
                 터가 발해의 상경이고, 금나라의 동경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발해의 상경은 여러
                 가지 사료들을 검토해볼 때 영안시 서쪽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통일신라의 최대 국경선은
                 요동반도 천산산맥에서 길림성 길림시 남쪽의 길림합달령 및 목
                 단강시 남쪽의 목단령을 잇는 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출처: 인천일보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
                 leView.html?idxno=113627
                 97) 최규홍, 「세종대왕의 육진과 일제가 인위적으로 정해놓은 육
                 진」, 『한국 북방국경의 흐름』 (서울: 도서출판 대한사랑, 2022);
                 대동여지도에서 보이는 북쪽 국경 지리는 그 지역이 지금보다 현
                 저히 넓어 보인다.                                            통일신라 북방 경계 예상도(B는 최대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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