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1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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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 위치 인식에 대한 고찰  길이숙



                    대개 폐려연(廢閭延)으로부터 압록강 북쪽으로 삼ㆍ갑(三甲)에 미쳐서는 다 졸본의 땅인데 동

                    쪽 사람들이 성천(成川)으로써 해당하게 한 것은 너무도 근거가 없는 것이다.                         83)



                   이유원(李裕元, 1814~1888)도 삼수 갑산지역으로 본다.



                    삼수갑산: 주나라 때는 고구려 땅이었다. 한나라 때는 서개마현(西蓋馬縣)을 두었으며 현도군
                    에 예속하였는데, 광무제(光武帝) 때에 구려에 들어가 졸본계(卒本界)가 되었다. 당나라 때는

                    안동부(安東府)에 예속하였다가 이윽고 발해에 들어가 솔빈부(率賓府)에 예속되었다. 요(遼)나
                    라 때는 여진에 들어갔고, 금(金)나라 때는 휼품로(恤品路)를 설치하였는데, 속빈(速頻)이라고

                    도 하였다. 원나라 때는 여진에 들어갔고, 원나라 말에는 고려에 들어가 갑주(甲州)를 두었다. 본
                    조에서는 갑산ㆍ삼수 두 부(府)를 두었다.             84)

                    요동: 원제(元帝) 때에 구려(句麗)의 시조 주몽(朱蒙)이 부여(夫餘)로부터 와서 도읍하고 졸본
                    (卒本)이라 하였는데,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도 하였다.                   85)

                    한(漢)나라 건소(建昭 원제(元帝)의 연호) 2년(기원전 37)에 주몽(朱蒙)이 졸본천(卒本川)에 나
                    라를 세웠다. 지금은 철폐한 여연군(閭延郡) 격강(隔江) 지역이다.                    86)



                   한진서(韓鎭書, 1777~?)의 경우도 같다.



                    고구려는 본디 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이다. 한(漢)나라 원봉(元封) 4년(기원전 107)에 멸망되

                    어 진번군(眞番郡)에 속하였다가 시원(始元) 5년(기원전 82)에 현도군(玄菟郡)의 치소(治所)를
                    이곳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흥경(興京) 등지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흘승골성은 바로 동사(東

                    史)에서 말하는 졸본부여(卒本夫餘) 땅이다. 그 땅은 강계부(江界府)의 폐현(廢縣)인 여연(閭
                    延)의 강 북쪽에 있다.”      87)
















                 83) 金正喜, 『阮堂全集』 제6권 題跋, 권수찬 돈인 이재의 허천기적 시권의 뒤에 제하다[題權修撰 敦仁 彝齋虛川記蹟詩卷
                 後]
                 84) 李裕元, 『林下筆記』 제11권 文獻指掌編 八道沿革 함경도 삼수(三水)ㆍ갑산(甲山) 지역
                 85) 『林下筆記』 제11권 文獻指掌編 遼東
                 86) 『林下筆記』 제11권 文獻指掌編 高句麗地 沿革, 제36권 扶桑開荒攷 高句麗
                 87) 韓鎭書, 『海東繹史 續卷』 제6 「地理考」 6 高句麗 1, 疆域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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