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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 위치 인식에 대한 고찰  길이숙



                    역시 협소한 장소라는 점에서 왕도의 중심지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력묘자촌 일대는 주몽의

                    건국지와 승천지(昇天地)가 결합되어 있는 성소였다.”                  133)



                   양시은도 “오수전과 대천오십전 등이 출토되어 고구려 건국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1호
                 대형 초석 건물지는 고구려 전기의 다른 유적들에 비해 규모와 건축 구조가 월등하다는 점에서 고

                 구려의 초기 왕궁 건축물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문헌 기록과 환런 일대의 유적 분포 양상을 함께
                 고려해 볼 때, 비류곡 홀본 서쪽산 위에 성을 쌓아 도읍으로 삼았다는 흘승골성은 오녀산성이었음

                 이 분명해 보인다.”      134) 고 하였다.










































                                        그림 13) 환인 지역 고구려 초기 산성 위치도           135)


                   그러나 졸본으로 알려진 오녀산성의 발굴결과, “산성의 고구려 시대 유물은 제3기가 기원후

                 1-4세기 중반, 제4기가 5세기 중-후반, 6세기 초-후반으로 나타나 추모왕이 도읍으로 삼았다고
                 보기에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논문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136)  그래서인지 노태돈은 오녀산성을


                 133) 기경량, 「고구려 초기 왕도 졸본의 위치와 성격」, 『인문학연구』, 34(0), (2017), 129-162쪽.
                 134) 양시은, 「오녀산성의 성격과 활용 연대 연구」, 『한국고고학보』, 115, (2020), 153쪽.
                 135) 최일례, 「고구려 시조묘 제사의 정치성 연구」, 『전남대』 박사, (2015), 45쪽, 오녀산성을 흘승골성으로 표기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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