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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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세종 육진의 위치 비정 비판 최원호
데, 호언(胡言)으로는 알목하(斡木河)이다. (중략) 세종 16년 봄에 드디어 석막(石幕)의 영북진
(寧北鎭)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옮기고, 바로 알목하가 서쪽으로 동량 야인(東良野人)과 인
접하고, 북쪽으로 적로(賊路)의 요충(要衝)에 해당하며, 또 알타리 유종(斡朶里遺種)이 살고 있
다 하여, 특별히 벽성(壁城)을 설치하고서, 본진(本鎭)의 절제사로 하여금 이를 겸하여 관할하
게 하였다. 그러나, 그 땅이 영북(寧北)과의 거리가 매우 멀리 떨어져서, 성원(聲援)이 너무나 미
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 여름에 따로 진(鎭)을 알목하에 설치하고, 풍산(豊山)·원산(圓山)·세
곡(細谷)·유동(宥洞)·고랑기(高郞岐)·아산(阿山)·옛 부거[古富居]·부회환(釜回還) 등지로써
경계를 삼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차임(差任)하였다가, 겨울에 도호
부(都護府)로 승격시켜 절제사(節制使)로써 이를 진수(鎭守)하게 하고, 판관(判官)과 토관(土
官)을 두었다. 대천(大川)은 두만강(豆滿江)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남쪽으로 바다에 이르
기 1백 50리, 서쪽으로 운두성(雲頭城)에 이르기 35리, 남쪽으로 부령(富寧) 지경에 이르기 75
리, 북쪽으로 종성(鍾城) 지경에 이르기 35리이다. 38)
회령도호부는 동남쪽으로 바다에 접해 있고 서쪽은 운두성, 그리고 남쪽은 부령도호부의 경계,
북쪽으로는 종성도호부의 경계에 이르는 지역으로 기술되었다. 당시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재 북한의 회령시는 어느 쪽도 바다와 접해 있지 않다. 사방 경계를 보면 동서 간의 거리는 185리
이고, 남북 간의 거리는 110리 이다. 면적으로 보면 4,400여 ㎢이다. [조선향토대백과]에서 기록
한 현재 회령시는 가장 넓은 1,750여 ㎢이다.
⑥ 부령도호부
사(使)가 1인이니, 절제사(節制使)가 이를 겸하고, 또 경성도 중익 병마(鏡城道中翼兵馬)를 겸
한다. 본래 경성군(鏡城郡) 석막 상평(石幕上平)의 땅이다. 세종 14년에 이 땅이 동량북(東良
北) 야인(野人)이 왕래하는 요충(要衝)이 된다 하여 비로소 영북진(寧北鎭)을 설치하고, 절제사
(節制使)를 차임(差任)하여 판경성군사(判鏡城郡事)를 겸하게 하였다. (중략) 〈세종〉 31년에
부거현(富居縣)을 혁파하고 민호(民戶)를 석막(石幕)으로 옮기고, 본현(本縣)의 굴포(堀浦) 이
서(以西), 회령부(會寧府)의 남전괘현(南錢掛峴) 이남(以南), 황절파(黃節坡) 이북(以北)을 이
에 붙이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켜 그대로 진 절제사(鎭節制使)를
겸하게 하고, 또 토관(土官)을 두었다. 진산(鎭山)은 두리산(頭利山)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
쪽으로 회령(會寧) 땅 옛 부거현(富居縣)의 지경에 이르기 59리, 서쪽으로 야인의 땅[彼土]과 연
접(連接)한 대산(大山)에 이르며, 남쪽으로 경성(鏡城)에 이르기 64리, 북쪽으로 회령 무산현
(茂山峴)에 이르기 53리였다. 39)
38) 『세종실록』 155권 「지리지」 함길도 회령도호부
39) 『세종실록』 155권 「지리지」 함길도 부령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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