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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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여기에서 왕락림은 동북공정 추진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동북변강사지

                 연구 내용은 동북강역 및 지방역사의 모든 영역을 내포하고 있으며, 중요 연구 분야의 초점은 동북
                 지방사, 동북변강민족사, 동북변계연혁사, 고구려역사 및 고고학, 발해역사 및 고고학, 19세기 조

                 선이민 중국사, 동북 및 주변국가지역관계사와 변계연혁사 등을 포괄하고 있다.                             14)  그리고 중국변
                 걍사지연구중심의 제3, 4대 주임과 동북공정의 부조장인 마대정(馬大正)은 “동북공정의 시작은

                 시대적 요구”임을 주장하였다. 즉 동북공정의 시발은 우연성과 동시에 필연성을 갖고 있으며, 지
                 난세기 80년대 이래, 변방학 분야의 발전에 따라 변방연구에 대해 높은 수요가 제기된 점이 동북공

                 정 시작의 필연성이며, 거기에 우리가 변방의 역사연구의 도전 및 변방의 안정에 대한 도전에 직면
                 해 있다는 것이 우연성이라고 하였다.              15)

                   1997년 7월에 조사하여 이듬해 9월에 보고한, “한반도 형세의 변화에 대한 동북지구의 안정과
                 충격”의 보고서 내용은 동북공정의 추진배경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에 의하면 동북지구에 대한 조

                 사공작의 중점 사항은 길림성의 안정에 있어서 도전과 대책이다. 즉, 1)19세기 후반 ~ 20세기 초
                 까지 한반도 전쟁과 탈북자들의 흐름과 방향, 2)길림성의 중․조변경 현상을 들고 있다. 이 해 하반

                 기에 착수한 2개 공작은 길림성 중․조변경지구의 조사연구와 길림성 당안관의 청대 중조관계 당안
                 자료의 수집과 정리였다. 그리고 조사연구 공작의 중점 사항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한반도

                 형세의 조사연구, 2)중조 역사상의 중요 문제점, 3)동북지구의 마약·종교·민족관계 문제 연구, 4)
                 북한의 탈북자 흐름과 실현 가능한 대책이다. 그리고 7원 12일부터 14일까지 길림시에서 “조선한

                 문 고적 정리 및 연구 학술연구토론회”에 고찰조가 참가한 후 중․조변경지구를 7월 15일부터 7월
                 23일까지 관찰하고 7월 25일 북경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중국변걍사지연구중심의 마대정, 유위,

                 이국강, 서경려, 이치정 등 11인이었으며, 이들은 9일간 한중국경선을 답사하였다. 결국 1999년
                 에 “중국변강지구역사 및 사회연구 동북공작 팀”이 성립되었다.                        16)

                   당시 대부분 탈북자들이 연변지역으로 숨어들었으며, 북한과의 외교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였
                 다. 또 하나는 중․조변경 현상에 대한 중국의 과민한 반응이다. 결국 당시 중국변걍사지연구중심의

                 지도자인 마대정 주임을 위시한 11명은 집안에서부터 국경선을 따라 백두산 천지의 한중국경선
                 을 답사 후 훈춘의 방천 지역과 두만강 지역까지 실제 답사하였다는 사실이다.                           17)  이와 같이 동북공

                 정의 추진 배경에는 북방지역의 영토 및 역사적, 국제정치학적 요인들이 잠재되어 있으며, 궁극적
                 으로 근대 한․중 양국 간에 분쟁이 되었던 간도지역의 영유권 문제와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비한 중국은 고대 한국사의 기원인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적 연
                 원의 왜곡과 조작이 필연적이었다.              18)



                 14) 위의 책, 5쪽.
                 15) 위의 책, 14쪽.
                 16) http://www.cass.net.cn/webnew/chinese/s32bjzx/ 참조
                 17) 이일걸, 위의 논문(2004), 40쪽.
                 18) 이일걸, 위의 논문(2004),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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