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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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으며, 조선족이 거주하는 북방영토가 당면한 정치,
경제, 민족, 영토문제 등을 동북공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특히 동북아의 상황에 따라 변화
될 수 있는 간도영유권 분쟁의 재발과 이에 따른 북방영토 지역의 혼란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의 왜곡이 절대 필요하였으며, 조선족은 중국역사의 틀 속에 존재하는
소수민족임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결국 동북공정의 목적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의식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22)
3) 중국의 역사침탈 과정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을 기념하여 『동북공정백서』를 펴낸 서길수는 중국의 역사침탈
과정을 5단계로 나누고 있다. 1) 1979년 이전의 역사침탈 0단계 :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는 한
국·조선의 역사, 2) 1979 - 1995, 16년, 역사침탈 1단계 : 역사침탈 논리의 형성과 역사 왜곡 단
계, 3) 1996 - 2001, 6년, 역사침탈 2단계 : 1차 국책 역사침탈(9차 5개년 계획) 추진과 완성단계,
4) 2002 - 2009, 8년, 역사침탈 3단계 : 2차 국책 역사침탈(동북공정) 추진과 완성단계, 5) 2010
년 이후, 역사침탈 4단계 :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는 중국 역사 23) 로 구분하였다.
특히 역사침탈 3단계인 ‘동북공정’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인 전반기 동북공정
(2002-2003)은 동북공정의 조직·구성을 완성하고 연구 과제를 진행하였다. 2단계인 후반기 동
북공정(2003-2007.1)은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을 내세워 ‘학술회의’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의
하면서도 뒤로는 길림성사회과학원으로 기지를 옮겨 동북공정을 진행하였다. 2004년 8월 우다
웨이(武大偉)를 파견하여 양국 간에 ‘5개항의 구두합의’에 합의하였다. 학술적 해결을 위해 양국은
두 차례 학술회의를 열었지만 중국의 구동존이(求同存異) 작전에 넘어가 그들의 역사침탈을 묵인
해주고 말았다. 24)
3단계는 동북공정 연장단계(2007.2-2009)로 볼 수 있다.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는
동북공정을 2002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라고 공고했지만 실제 3년을 연장하여 2009년까지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성과를 발표하였다. 2009년 7월 24~25일에는 중국사회과학원과 길림성
사회과학원이 연합·주관하고, 요령성·흑룡강성 사회과학원이 공동 주최한 “2009년 동북 변경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술연구토론회”를 장춘시에서 열렸으며 ‘동북공정은 예정된 임무를 거의 완
성하여, 동북변경지구의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선언한다. 25)
더구나 2010년 이후의 역사침탈 4단계는 침탈한 역사의 자국 국사화 단계로, 2017년 1호까지
주제 237호를 『동북사지』에 발표한 후 폐간된다. 2017년 이후는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 역사
를 중국 역사로 정착되고, 인터넷 매체인 ‘백도’의 『백도백과』에는 우리민족의 고대사가 중국사
22) 이일걸, 위의 논문(2004), 43쪽.
23) 서길수,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 동북공정백서』, 맑은 나라(2022), 5쪽.
24) 서길수, 위의 책, 10쪽.
25) 위의 책,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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