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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을 망각한 나라

‘개천’을 망각한 나라 / 탁인석 광주문인협회 회장 2021. 10.12 광주매일신문  


대한민국의 10월은 가는 곳마다 문화가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문화의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3일은 하늘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여한 개천절이다. 단군이 4334년 前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고 즉위한 날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생일인 셈이다. 누구나 생일이 되면 무심상 지나치지 않는다. 생일상을 차리고 탄생의 의미를 새기고 그에 맞는 축하를 곁들인다. 개천절이 대한민국의 생일이라면서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국가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날이 가장 희미한 별 볼일 없는 날처럼 바뀌고 있다. 태극기 달기마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촌에 태극기 게양세대를 살폈더니 과장 없이 우리 집뿐이었다. 순간 드넓은 광야에 나 홀로 서있는 느낌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건국 기념일에 보는 광경은 이리도 씁쓸하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우리 민족의 평화를 상징하는 모습이고 태극은 음양으로부터 창조된 우리 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4괘는 하늘과 땅·물과 불을 상징하며 봄·여름·가을·겨울 등 사계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한다. 3월1일 만세운동이 태극기 없이 가능했겠는가. 8·15광복절이나 6·25한국전쟁, 5·18민주화운동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개천’에는 단군이 계셨고 그 상징을 태극기라 할 수 있다. 우리 ‘애국가’에는 다소의 시비도 붙지만 태극기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을 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수없이 많은 시련과 전쟁이 있었다. 그 위기 때마다 극복한 저변에는 단군의 민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근세 일본 침략에 맞선 민족의 저항정신에는 단군정신을 전제한 ‘개천’이 있었다. 개천과 단군과 태극에는 남북이고 동서고 이념의 구분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개천절 날, 필자는 광주의 단성전(檀聖殿)을 찾았다. 광주의 단성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단성전은 상무지구 무각사의 뒤편에 위치한 여의산(如意山)을 이르는데 바로 그 산의 산책길 중간에 가파르게 올려 세운 계단의 꼭대기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우리를 만난다. 그 입구 안내판에는 ‘1972년 상무대 안에 국조이신 단군왕검의 뜻을 기리기’위한 성전이라 새겨져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로 삼았다는 ‘홍익인간 제세이화’로 나라를 세운 1세 단군왕검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되어있다. 단성전에 들어서니 모인 사람은 불과하면 20명 내외였다. 낡은 돗자리와 찢어진 창호지로 제를 올리는 제관 이하 참석자의 모습이 숙연했다. 누구 하나 알아줄 리가 없지만 개천의식이 엄숙하게 봉헌되는 순간이었다.

원근 간에 가벼운 것에 길들여진 세상이다. 무거운 것, 의식적인 것은 가부간에 거부되고 있다. 민생이 급한데 역사 따위가 대수냐는 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금년 광복절에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장면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먹먹했다. ‘나라가 불행한데 먹고사는 일만 하겠는가’라는 홍장군의 소싯적 기록이 나온다. 장군의 초인적 강인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분이 지닌 역사의식, 뿌리의식 외에 다른 딴이유란 발견할 수 없다. 잃어버린 조국의 역사를 많이도 안타까워했던 분이 홍범도 장군이 아니었던가. 1911년 계연수 선생이 어려운 여건에서 목판으로 ‘환단고기’를 출판할 때 홍범도, 오동진 등이 거액의 자금을 댔다고 한다. 그 븐들은 형편이 좋아서 그리했겠는가. 역사회복을 통한 민중의식의 고취를 염두에 둔 때문이리라.

개천절은 대한민국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처음의 생일이다. 어찌 의미가 가볍다 하겠는가. 역병 때문에 잠시 주춤할 수는 있다지만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우뚝한 선진국이다. 필자가 잠시 거주했던 고창군에는 연중 축제만도 무려 12개나 된다. 복분자축제, 모양성축제, 고추축제, 수박축제, 땅콩축제, 국화축제 등등. 조그마한 고을마저 이 정도인데 개천절을 망각하는 대한민국을 어찌 미래가 있는 나라라고 하겠는가. 지금의 현실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들 중 누구하나 ‘개천’의 의미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개탄스럽기 그지없고 이 같은 역사의 불행이 어디까지 흐르는 강물이라 할까.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이상화 등 우국 시인에게 물어보고 싶으나 그들은 이미 입을 잃은 지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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