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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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인 : 제가 원래 한국전쟁 이듬해에 국민학교를 2학년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는 시골에서 먹고 살기 힘들 때고 혼란기여서 같은 학년도 나이 차이가 많고 그
랬어요. 그나마 같은 학년에서 내가 나이가 적은 편이었어요. 그리고 국민학교를
나와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미래에 대한 생각이란 게 별로 없었어요. 문제
는 생존 그 자체였으니까. 우리 형제가 6남매였는데 선친께서 전기 기능공을 하
셨는데 고정적인 수입이 별로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우리는 정말 밥을
굶는다는 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가 하는 걸 몸으로 넘긴 세대예요.
최원호 : 예. 정말 격동의 시기를 겪으신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대
학 진학을 하실 때 법학과로 진학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주인 : 내가 원래는 이과생이었어요. 아무래도 집안 살림이 어렵다 보니까 당시
는 기술을 배워야 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 제일 유행이 원자력 공학
이었는데, 나는 기계과에 진학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다가 친구 따라
어디 간다고 법대가 좋다는 말을 듣고 진학하게 됐죠. 법관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이과보다는 문과가 내 적성에 잘 맞
는 것 같았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고등학교 때에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최원호 : 아 그런가요. 고등학교 때 다른 과목보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김주인 : 그때 역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인상 깊은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교과서
에 있는 거 외에도 역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지 등에 대해 말
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히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
요. 그래서 제가 뒤늦게 역사학으로 석·박사 공부를 할 때 석사 논문은 ‘광개토태
왕릉비’에 대해 썼어요. 박사 논문은 ‘왜 5왕’에 대한 것을 썼구요.
최원호 : 그럼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의 영향이 있었던 거군요.
김주인 : 예. 그런데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진학할 때 우리 가
족들이 전부 서울로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나만 혼자 백부인 삼촌 집에서 학교
를 다녔어요. 그런데 내 고모 아들 중에 조동걸이라고 있었어요. 그분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최고 원로 학자였는데 나한테 고종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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