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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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가야는 건국 시기부터 6개의 가야가 서로 간의 경쟁이나 투쟁 자체
가 없이 하나인 듯한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삼국사기』의 초
기 기록에는 김수로왕이 등장하는 구체적 기록이 있는데, 이후 나머지 가야 기록
은 6가야의 어느 가야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6가야의 위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 정확히 전하고 있는데 다
음과 같다.
<6가야의 국명과 위치>
가야 이름 위치
가락국(금관가야) 김해(金海)
고녕(古寧)가야 함녕(咸寧), 현 상주 함창지역
성산(星山)가야(벽진(碧珍)가야) 경산(京山) 혹은 벽진(碧珍), 현 성주지역
대가야(大伽耶) 고령(高靈)
아라(阿羅)가야 함안(咸安)
소가야(小伽耶) 고성(固城)
그런데 이러한 6가야 중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김해 가
락국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의 가야 고분군으로 고녕가야와 성산가야 고분
군이 배제되어 많은 지적을 받았다. 고녕가야는 대일항쟁기 일본이 학자들이 그
존재를 부정함에 따라 광복 후 그 학맥들에 의해 현재까지 철저히 부정당한 결
과이고, 성산가야는 해당 가야고분군에서 신라유물이 많이 출토된다는 이유로
가야문화에서 배제하려는 학계일부의 주장으로 인한 것이다. 대신에 대가야 영
역의 창녕 비화가야 고분군이 등재되었고, 남원과 합천의 가야고분군을 별도의
국가로 주장하며 『일본서기』 임나 지명인 ‘다라’와 ‘기문’으로 등재하려 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일본서기』 지명은 삭제되었으며, 합천고분군은 “쌍책지역가야
정치체”로 남원은 “운봉고원 일대 가야정치체”로 표기되어 등재되었다. 『일본서
기』 지명으로 등재 시도는 광복 후 친일매국 사학이 아직도 한국사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삼국사기』「지리(地理)」 ‘신라(新羅) 고령군편’에는 고녕가야가 상
주 함창지역에 존재했다는 자세한 기록이 전한다.
일본지역의 가야 개척역사를 직접 찾아 연구한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에 6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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