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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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미스터 션샤인』의 애기씨, 고애신의 실제 모델
당시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 윤희순은 춘천
시 남면 발산리에 살았던 36세 여성이었다. 윤희순은
1860년 6월 25일 경기도 구리(양주군 구지면 수택리, 현 구
리 수택동 검배마을)에서 윤익상(尹翼商)과 덕수 장씨의 큰
딸로 태어났다. 유학자 집안에서 나고 자란 윤희순은
16세 되던 1876년 춘천 의병장 외당(畏堂) 유홍석(柳弘
錫)의 장남이며 팔도창의대장 의암 유인석의 조카인 유
제원(柳濟遠)과 혼인하였다. 강원도 춘천 남면 고흥 유
씨 집안은 성리학적인 질서를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물
리치고자 한 반외세, 반침략적 민족운동으로 이후에는
항일 의병 투쟁으로 그 정신이 계승된 ‘위정척사 운동’
의 사상적 근거지였다.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도 고흥 유씨 집안으로 유홍석과는 같
은 항렬을 쓴다.
효와 충을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 도리로 알았던 조
선시대 사람들은 나라의 운명을 곧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다. 그래서 국난에 처하면 전국에서 의로운 군대인
의병이 일어났다. 사족(士族)부터 농민, 사냥꾼, 포수, 노
비 신분의 종들까지 의병에 나섰다. 대한제국 말기 국
권이 피탈되는 시기, 매천 황현 같은 사대부들은 스스
로 자결을 선택하면서 충(忠)을 실현하였고, 의병들은
총을 들고 나섰다. 이때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여성 의
병 지도자가 나왔다. 바로 윤희순이다.
의병 활동을 위한 노래를 만들다
윤희순은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 1841~1913)의 의병
활동을 도왔다. 의병들의 음식과 옷을 조달하는 한편
‘안사람 의병가’,‘병정의 노래’ 등의 노래를 지어 사기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tvN
를 북돋웠고, 여성들도 구국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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