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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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당 유적비(중국 요녕성 환인현)                            해주윤씨의적비(海州尹氏義蹟碑)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일 인재 양성을 위해 노학당(勞學堂) 창립
              윤희순은 항일투쟁이 장기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체계적이고 지속해서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 의식과 민족의식을 확고하게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민족 학교 건립에 나섰다. 우당 이회영과 우병렬,

            중국인 도원훈 등의 도움을 받아 동창(東昌)학교의 분교인 노학당을 세웠다. 동창
            학교는 대종교 계열인 윤세영, 윤세복 형제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우리나
            라의 무궁한 발전과 국권 회복을 기약한다는 취지에서 세운 학교이다. 노학당은

            교실·운동장·식당·기숙사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윤희순은 이곳에서 항일
            인재를 양성하였다.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기까지 이곳 학교에서 졸

            업한 50여 명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윤희순은 이곳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에
            게 항일 애국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백절불굴의 의지로 의병 투쟁을 지속하다

              힘든 항일 운동 중 1913년 시아버지인 유홍석이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어 1915년에는 숙부 유인석과 남편 유제원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도 윤희순은 백절불굴의 의지로 무순(撫順) 포가둔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조선독립단과 조선독립단 가족부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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