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P. 45
2024. 09
최원호 : 광주 고려인마을을 세
우는 데에 앞장선 두 분이 그렇
게 처음 만나신 거군요.
신조야 : 예. 그때 (목사님을) 처음
만났는데 고려인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했거든요. 다른 사
람들은 모두 타국 사람들이잖아
➊
요. 그랬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만나러 오더라구요. 자기가
쓰던 핸드폰도 가져다 주고 밥도
해서 우리를 먹여주고 그랬어요.
그게 2002년 여름이었어요.
최원호 : 고려인으로서 처음 한국
에 와서 적응할 때 어떤 생각들
이 들던가요?
➊
신조야 : 처음에는 제가 고생을
① 인터뷰 중인 신조야 대표와 편집장
많이 했어요. 말도 못 하고 이렇
② 고려인문화원에서 전시물에 대해 설명 중인 이천영 목사
게 다니기도 힘들고 하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때는 외국인을 위한 센터 같은 게 없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광고판 읽으면서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약간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죠. 그런데 살
다 보니까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도 싫고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좋은 거예
요. 처음에는 내가 바빠서 잘 몰랐지만 내가 살면서 느끼게 된 겁니다. 우리 민족
이 어디서 살아야 되나? 자기 민족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거를 내가 느꼈어요.
최원호 : 왜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던가요?
신조야 :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가 와보니까 여기가 너무 살기 좋아요. 이렇게
좋은 데서 우리 민족이 살았는데, 왜 우리는 남의 나라에 가서 살았을까 생각하
게 됐어요. 마트에 가면 된장 고추장 간장이 다 있어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는 그런 걸 파는 데가 없었어요. 한국에 오니 간장도 있고 김치도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