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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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야 : 딸이 한국 사람과 결혼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이 독립을 선언하니까 고려
            인들이 다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떠나자. 구소련이었을 때 모스크바

            도 가보고 학교도 다녔지만, (우즈베키스탄이) 무슬림 나라 된다면 어떻게 살겠냐?
            하면서 당시에 고려인들이 싹 다 이사하더라고요. 러시아 연해주로 많이 돌아갔

            어요. 우리 할아버지도 거기서 왔으니까 딸이 먼저 연해주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1995년도에 연해주에 왔는데,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아니고 시골이었는

            데, 농사를 한번 지어볼까 했어요.


            최원호 :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다시 돌아

            가신 거군요?
            신조야 : 예. 러시아 연해주로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

            아가서 여권을 바꿔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딸을 먼저 할머니 있는 우
            즈베키스탄으로 보냈는데, 소식이 없어요.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왔는데 한국에 가
            있다는 거에요. “나 한국 사람과 결혼했어요. 임신했어요.”라고 하더라구요.



            최원호 : 따님이 갑자기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겠네요.

            신조야 : 예. 그러면서 딸이 우즈베키스탄으로 초청장 보내줄 테니까 거기서 나오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01년 9월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최원호 : 광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신조야 : 처음에는 딸이 있는 서천에도 갔었지만, 서울이나 인천 등에서 일을 했
            어요. 딸이 시골에서 힘들게 사는 걸 보고 모텔이나 횟집 등에서 일해서 사위한
            테 돈 보내줬지요. 그런데 단속이 심해서 무서워서 일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주

            인이 전라남도 함평에 가 보라고 소개를 시켜줬어요. 나는 전라남도가 어디 붙었
            는지도 몰랐는데, 그래서 함평으로 혼자 왔죠. 그래서 콘크리트 회사 들어가서

            한 4개월 일했어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었어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으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 사람들을 싹 다 합법으로 만들어줬어요. 그때 1년 비자

            를 받았어요. 그 후에 외국인들을 위해 봉사하던 이천영 목사님을 만나서 광주
            로 내려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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