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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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 이암(李嵒, 1297~ 1364)
이익환 : 그분은 한 마디로 어떤 분이셨냐 하면 돌아가셨을 때 공헌이 너무
많아서 공민왕께서 직접 초상을 그려줬거든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왕이 직접 신하의 초상을 그려준 예가 없지 않을까. 정치적인 여러
가지 일을 잘하신 것이 그걸로 단적으로 표현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원나라의 간섭이 극심한 시기였는데, 행촌 선생은 자주적인 것을 주장하셨
어요. 당시에는 나라 이름을 없애고 원나라의 한 성(省)으로 하자고 주장하
는 친원파들이 득세할 때 적극 반대하면서 왕께 상소를 올리고 했죠. 제가
아까 쓴 ‘우국(憂國)’이란 표현은 그런 측면에서 생각할 수가 있죠. 또한 정치
는 결국 ‘위민(爲民)’인데 원나라에서 『농상집요』라는 책을 들여왔어요. 이암
선생이 들여온 『농상집요』는 농업을 발전시켜서 백성들이 배부를 수 있게
하는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원호 : 지금도 정치의 핵심은 이념 싸움의 논리를 넘어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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